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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Mar 20. 2024

그러니까 이게 유전이라고

4. 엄마라고 부른 사람이 4명이나 됩니다.

이모가 봤을 땐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남자친구 아버지가 지금 남자친구 엄마와 아닌 다른 여자랑 살고 계시다며?







이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후 막내이모는 나에게 줄곧 이렇게 말했다.



오빠 아버지가 그런 거 가지고 왜 우리 오빠까지 그렇게 보는 거야?

나는 내심 서운했다.

비록 대학교 때 전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일주일 만에 나랑 사귀게 됐지만, 우리 오빠는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얼마나 바른생활 사나인데! 흥.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이모와의 대화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 분위기, 그 온도, 그 습도, 밖에서 들려오던 소음소리도...








보란 듯이 잘 살겠다는 나는 이혼했다.

이모말이 맞았던 걸까?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진짜 맞는 걸까?

바람도 유전이라는 말이 맞는 말일까?


연애 10년, 결혼생활 5년 동안 그가 엄마라고 부른 사람은 4명이나 됐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떻게 진짜 엄마가 아닌 사람에게 엄마라고 부르는지 참으로 의아했다.

어릴 때 자기를 키워준 사람이면 또 모를까, 20살이 훌쩍 넘어 잠시 잠깐 만난 아버지의 여자들이었다.

그런 여자들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쿨한 남자라고까지 생각했으니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


전 시어머니, 그러니까 진짜 리얼 엄마와의 이혼 후 세명의 여자와 짧게도, 길게도 함께 사신 분이 전남편의 아버지였다.

결혼 전부터 나는 시아버지가 싸했다.

돈벌이는 못하면서 허세 가득 찬 말투와 제스처.

아들 카드로 생활하면서 두둑한 용돈은 항상 챙기는 마인드.

뭐 하나 해주는 거 없으면서 자식내외들에게 바라는 거 많은 심보.

거짓말쟁이


상견례 때에도 어찌나 말이 많고 허세가 가득한지 결혼을 엎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그때 엎었어야 했는데...)

힘든 거 있음 자기에게 다 말하라고 하더니, 날 더 힘들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서울 강남에 돈 많은 과부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그 여자와 혼인신고까지 했었다.

그분은 아주 재력가였는데, 전남편의 아버지 역시 재력가인 줄 알고 혼인신고까지 했다고 한다.

얼마나 허세를 부리며 거짓말을 했을까? 안 봐도 눈에 선하다.

그것이 뻥이라는 사실을 알고 혼인신고 며칠 만에 전남편의 아버지는 쿠쿠 밥솥과 함께 강남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4번째 여자와 지금 잘살고 있다.

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5번째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






결혼 후 나는 모든 것을 남편에게 위임했다.

표면적으로는 돈도 잘 벌고, 외제차 3대를 굴리며, 말솜씨까지 좋아서 모든 부분에서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위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투자에 능했기 때문에 투자금을 받기도 했다.

사실 나는 생활비를 타서 썼기 때문에 남편이 정확히 얼마를 버는지, 얼마의 카드값이 나가는지 알 수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업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생활비를 주지 않은 달이 더 많아지고 돈에 쪼들려갔다.

그 찰나에 카드명세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결제 대금 400만 원.

모두 전 시아버지가 쓴 거였다.

모텔까지 간 내역을 내 눈으로 보고 있자니 참으로 역겨웠다.


"이거 뭐야? 왜 오빠카드를 아버님이 쓰고 계시냐고!"

400만 원이 누구 개 이름이야?

우리도 지금 돈 없어 죽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할 거야?


"아니야, 아버지한테 말하면 돈 그대로 다 주실 거야. 이때까지 항상 받았었어"



누굴 닮았는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었다.

결혼 후, 카드값도 모자라 각종보험금, 용돈에 중형차까지 사드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 빚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께 빌려가서 투자 한 1억 도 공중분해 되었다.

1억을 진짜 투자한 것인지, 자기 아버지에게 모든 걸 사다 받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니, 그가 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캐물으면 평소와는 다르게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투자금이란 명목으로 본인 고모에게 3억, 다른 사람 등등에게 몇억씩 해서 20억 가량을 받았는데 이것이 모두 33살에 빚만 20억 인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런 남자의 와이프가 되었다.


하늘이 무너졌다.

돈걱정은 하지 않을 거 같아서 이 남자를 선택했는데 30대 초반에 20억을 빚진 사람이 되어있다니.

아이는 태어났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그래, 본인이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니 믿어주자. 해결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자.

안 갚는다고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해서 갚는다잖아...

새벽에 나가 밤늦게까지 안 들어와도 이해했고, 주말도 없이 회사에 나간 사람을 보고 안도했다.


일을 해서 꼭 갚겠다고 호언장담한 그 사람은 아직도 친정부모님께 10원 한 장 주지 않았다.

대신 내가 안 먹고 안 입고 모아 부모님 돈을 갚았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친정에 다녀왔다.

결혼 전엔 살가운 딸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엄마가 매일 보고 싶었다.

엄마가 해준 음식도, 냄새도 모두 그리웠다.

조그마한 아이를 둘러업고, ktx나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창원으로 내려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음만큼이나 눈물을 흘렸다.


보통 때면 ktx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로 데리러 오던 사람이었는데 한동안 일이 바쁘다며 데리러 오질 않았다.

나는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찬 아이스박스와 아이 짐으로 가득한 캐리어를 이고 지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몰랐다.

그 시간에 다른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걸.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줄만 알았는데...



안도감은 배신감으로 돌아와 내 뺨을 쳤다.






웃기다.

피는 못 속인다라는 말이 이 집안에는 100% 찰떡과도 같은 말이었다.

바람도 유전이라는 말은 이 집안에는 맞는 말이었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이 나에게로 오는 듯했다.







별 볼 일 없는 섭섭한 밤도 있어요.

오늘도 그런 밤이었죠.

창을 열고 세상 모든 슬픔들에게

손짓을 하던 밤.

<잔나비_나의 기쁨 나의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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