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ne jeong
Jan 23. 2023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
예고도 없이 똘이(첫아이 태명)가 찾아왔다.
산부인과 진료 후 아기의 출생예정일이 19**년 7월 7일이라고 산모 수첩에 적어주며 한 달에 한 번 정기검진해야 하니 다음 달에 만나자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육아일기를 쓰기 위해 노트 한 권 샀다.
실감 나지 않았지만 나를 엄마로 선택해 줘서 고맙다며 잘 지내보자고 인사했다.
남편에게 우리의 첫아이니까 인사하라고 했더니 머리만 긁적긁적.
나: 엄마 이름은***이고 아빠 이름은 ***이란다. 아가라서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단다.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고 감사해.
남편: 똘아 아빠야....
나: 그게 다야?
남편: 할 말이 없어.
엄마는 사소한 것도 똘이에게 이야기할 테니까 똘이도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렴.
입덧은 하루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먹고 싶은 음식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정말 많이 먹었다.
지름길, 좁은 길이 있으면 큰길로 돌아다녔다. 어른들이 아이를 가지면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해서 따랐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을 읽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글에 등장하는 '쌀'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생쌀이 어찌나 먹고 싶던지 이가 상할 수 있다고 해서 가끔 먹었다.
군감자의 냄새가 떠오르며 당장 먹고 싶었다. 평소에는 나를 대표하는 단어들이 양보, 배려였다면 '꼭, 지금, 당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매일 낯선 모습에 스스로 놀란 나에게 '그 시기에는 지극히 정상이야. 작은 양보도 하지 말고 마음껏 즐겨'라고 엄마가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똘이 잘 잤니!라는 말을 시작으로 모든 행동을 설명하며 아이와 이야기했다.
사계절이 선물하는 풍경들, 자태를 뽐내는 꽃들, 매일의 하늘, 날씨, 사람들, 만나고 눈에 담는 모든 모습을 설명했다. 먹는 음식, 장소 하루 종일 수다쟁이 엄마 때문에 똘이가 피곤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똘이가 처음 경험하는 크리스마스!! 빨간 곰돌이가 웃고 있는 카드를 준비했다.
똘아 사랑해~, 남편은 '건강하게 자라서 만나자 똘아'라고 썼다.
크리스마스 선물 구입을 위해 백화점에 갔다가 자선냄비 기부를 만나서 똘이 마음으로 기부금을 넣었다. 엄마를 자선냄비로 갈 수 있도록 똘이가 만든 거야.
똘이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따뜻한 사람이 될 거라로 생각해.
직장생활 중이었으므로 똘이가 듣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나 상황들이 생겼다.
그럴 때는 쉬는 시간이나 퇴근 후 그 일에 관해 설명하고 똘이가 놀라지 않도록 이야기했다.
상대방은 제로, 자신은 백 퍼센트인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전달하려는 사람을 만났다. 똘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똘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아빠도 엄마도 다른 것처럼 화를 심하게 내는 사람, 타인의 실수를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 상대방과 조직 사이에는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만 강조하는 사람이 있단다. 오늘은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엄마의 고객이었어. 엄마 입장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엄마 책임자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거부한 상태였어. 그래서 큰소리가 났고 그 고객은 화가 나서 돌아갔지만, 여기에서 엄마, 엄마 책임자, 고객 모두 잘못한 사람은 없어.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고객 혼자 분노한 거지. 고객도 이유가 있었겠지 생각해.
똘아 책이나 선생님, 존경할 만한 지식인들에게서 배우는 경우도 많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단다. 똘이가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좋았을까? 싫었을까?
당연히 싫지?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면 그 순간 하나의 배움이 성립된 거란다.
똘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엄마 아빠의 멋진 아이로 자랄 거라 믿어.'
먹고 싶은 음식들이 너무 많아서 집에서 5분 거리인 워커힐호텔 뷔페식당에 자주 갔다. 어른들이 말하기를 대부분 여성이 특히 첫 아이 임신 시기가 평생 호사를 누리는 최고의 시간이라며 요구사항이 있으면 모두 말하고 최고의 컨디션을 가지라고 알려주었다.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평생 한이 된다는 말도 했다.
달이 밝은 날이면 동네 산책을 했다. 집 근처에 배밭이 있었는데 배꽃에 달이 걸터앉아 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표현하기에 미안할 정도였다. 더 근사한 표현으로 똘이에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날뛰는 심장 소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첫 태동으로 똘이가 대답했던 순간 역시 달빛이 엄마의 심장 속으로 전력 질주할 때였다.
똘이와 함께 하는 순간을, 하루하루가 빈 노트의 침묵을 깨트리며 활자들이 꼼지락거렸다.
한 줄 요약: 첫 만남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