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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Jan 26. 2023

태교(2)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출산을 3개월 남겨두고 직장에 출산휴가를 신청했다.

최대로 가능한 휴가는 6개월이었고 산전 3개월 산후 3개월만 가능했다. 대부분 여직원이 2개월의 유급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였다. 직원 한 명의 부재는 다른 직원에게 나의 일을 나누는 일이므로 심적 부담이 있다. 장기휴가와 퇴사 중에 선택하라는 남편의 강력한 요구에 떠밀려 6개월 휴가를 냈다.


부모만 믿고 첫발을 시작한 아이를, 평생 살아가야 할 한 인간을 품는 일이다. 틀렸다고 지워서 다시 쓸 수도 없는 일이다. 부모가 해야 할 최대한의 생각과 행동을 해야 했다.


똘이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벚꽃의 계절 4월의 어느 날.

벚꽃 망울이 나뭇가지에 숨었다가 연분홍 설렘을 밀어냈다. 아지랑이가 간지럼을 태우자 꽃 문을 활짝 열었다.

멀리서 보던 풍경들이 눈앞에서 말을 걸어왔다. 시간적 여유가 주는 많은 것들이 선물상자를 묶는 리본처럼 나풀거리며 내 가슴을 토닥였다.

여유로운 시간, 넉넉한 마음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음악도 많이 들었지만,음악마다 작곡의 배경과 작곡자를 공부하며 똘이에게 설명했다.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가 시를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글을 읽어주며 음악을 들었다.


'작은 새들이 노래하며 봄에게 인사하고 봄바람이 실려 냇물이 도란도란 흐르고

꽃이 한창인 초원에 나뭇잎이 속삭이고 양치기는 충실한 개 옆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요정과 양치기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보금자리에서 양치기의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이 시를 비발디가 썼거나 누군가 써놓은 시에 음표를 붙인 봄이 뛰어다녔다. 음악을 타고 벚꽃과 바람이 춤을 추며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 모습을 보았을까?

빨랫줄에 젖은 옷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타며 몸을 말렸다. 그 순간 내 몸의 모든 긴장과 생각이 음표를 따라 몸을 빠져나갔다.

봄을 노래하는 시를 따라 날갯짓하는 여유로움을 아이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 때문일가? 요즘도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의 옷들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 시 한 구절을 읊조려보곤 한다.



술 좋아하는 남편은 퇴근도 늦고 술에 얼근하게 취해서 귀가하는 날이 거의 매일이었다.

태교 일기장에는 '오늘도 아빠가 늦는데'라는 문장이 가장 많았다. 어떠한 상황이든 평정심 위에 기쁨과 감사를 덤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뿐더러 수정이 불가능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똘이가 생겨서 좋고 취해서 좋고 나날이 좋은 남편, 몇 날 며칠 술자리가 이어지면 한두 번은 화를 내고 말다툼도 했을 텐데 신기하게도 그 기간만큼은 화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음에 분명했다.

감정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순간이 당연히 생겼다. 그때는 그 감정보다 더 소중한 똘이를 떠올렸다. 100% 나의 감정을 통해 배우는 똘이를 생각하면 이어지는 행동과 감정처리가 늘 평화로웠다. 엄마라서 가능했던 기적의 순간들은 신이 주신 지혜의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한 줄 요약: 감정에도 순서가 있다. 그러나 태아를 안고 있는 엄마의 감정에는 순서가 없다. 영 순위의 태아는 늘 우선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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