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을 놓고 볼 때 여러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역시 나에게도 가장 큰 인생의 변화를 가져다준 시기가 많지만 이런 경험은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만약 이런 사건이 없었더라면 난 아마 지금쯤 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면하지 못했거나 여기저기 통증으로 고생하며 살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은 눈 뜨면 달려야 했다. 스스로 채찍을 휘두르며 당근을 받으려는 삶이 아니었을까?
직장에서도 최고의 직원이어야 했고 모든 직원이 나를 좋아하고 최고의 직원이라 생각한다고 믿었다.
나의 에너지는 귀가할 수 있을 만큼의 힘만 남겨놓고 모두 소진했던 시간도 많았다.
새벽과 주말을 이용해 취미생활도 끊임없이 이것저것 배웠다.
결혼 후 아이들까지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에너지는 초능력의 힘으로 버티기를 했다.
퇴근 후 종일 아이들을 돌봤던 엄마를 쉬게 하고 식사 후 뒷정리를 마치면 아이들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을 돌보는데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엄마는 나와 남편의 퇴근과 동시에 집안일도 아이들 돌보는 일도 못 하게 했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놀아주고 9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수시로 일어나서 우유를 찾으면 먹이고 몸이 좋지 않아 보챌 때는 약한 남편을 위해 아이와 거실에서 잤다. 손에서 빠져나간 우유병이 바닥으로 구르는 날이 허다했다. 집에서도 최고의 아내이자 엄마, 딸로 살았다.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처럼 심리상담 과정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존재 여부도 알지 못했던 내면 아이를 처음에는 부정했다.
모든 연구 결과가 백 퍼센트 맞는 건 아니니까 예외라는 것도 있으니까 그 확률에 내가 해당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강하게 밀어냈다.
그때의 내 삶에 작은 불만도 없을 때였다.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몰랐다.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달리는 그 자체가 나의 전부였다.
수업에서 자기소개 및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희망자만 발표했다.
한 학생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남편 이야기, 직장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이러다 제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고 저를 찾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수업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교수님이 학생들을 향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개에 xxx의 아내입니다 에서 남편을 빼면 자신이 아닐까요? 아이들을 지우고 직장을 지우고 자신의 앞에 붙어 있던 수식어 들을 하나하나 마지막 남은 나의 이름까지 삭제시켰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만 남았을 때 느낌을 쓰거나 발표해 보라고 했다.
순간에 일어난 감정을 표현하라고 했다.
한 학생이 눈물을 닦았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눈물로 감정을 표현했다며 그 학생은 이번 수업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 시간 남편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엄마인데 그걸 지울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내면 아이를 여전히 부정하고 있었다.
교수님의 지도와 나의 노력으로 한발 한발 걸어가던 어느 날 내면 아이가 처음 존재를 드러냈다. 너무 작고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나였다. 어릴 적의 내가 표정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수업 시간이 아닌 혼자 있는 공간에서 나를 만난 건 어쩌면 행운이었다. 충분히 내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다.
말없이 울기만 하다가 내면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지나온 시간의 고단함과 이유도 모르고 달렸던 퍼즐 조각들이 자동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기운이 바닥으로 떨어져 깊은 잠에 빠졌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나의 내면 아이라는 이름을 붙여 배게 하나를 내 앞에 눕혔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또 묻었다. 울다가 자다가 거의 2주를 그렇게 보냈다. 고단했던 나의 발이 쉼을 가졌다. 나의 달리기는 나에 의해서 시작됐고 나에 의해서 멈출 수 있었다.
그 후의 삶은 주체가 상대방에서 나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으로 변한 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리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에게 백 퍼센트 맞추던 내게도 선택할 힘이 생겼다.
즉, NO가 가능해졌다. YES가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그것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지만 NO를 해도 내 주변과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구나, 알았어, 그럼 다음에 하자라는 대답이 나에게 달려들었고 평상시와 똑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가끔 한 번씩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내면 아이의 손을 놓칠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알아차려서 다시 손을 잡을 때도 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교수님과 1시간 정도 상담도 받고 내가 나를 상담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나의 운명을 바꿔놓은 내면 아이가 요즘은 어른으로 성장해서 친구가 되었다.
끝과 끝에서 만났던 나와 나의 내면 아이는 이제 하나가 되었다.
그 길을 다시 가라고 하면 결과적으로 볼 때 한 번에 YES지만 과정을 떠올리면 NO.
그 과정을 얼마나 쉽게 이겨내는지는 나에게 얼마만큼 솔직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현재 자신이 완벽하고 이만하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속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완벽한 현재의 삶이 한 편의 연극은 아닐까?
백 퍼센트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상태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에게 채찍 없는 당근을 준다. 타인이 아닌 가족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주는 당근의 맛을 딱 맞게 표현할 단어를 아직은 찾지 못했다. 비슷한 표현이라면 매 순간이 넉넉하고 편하다 정도로 약간 비슷하게 표현해본다.
한 줄 요약: 내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많은 것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고 필요한 것일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