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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Dec 26. 2022

갱년기야 너 뭐니? (1)

나는 늙지 않는다.

갱년기: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되며

남성의 경우 성 기능이 감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 네이버 국어사전


신체 기능이 저하된다는 갱년기. 거짓말 같은 소리.

기운인지 열인지 펄펄 끓어오른다. 온몸의 기운이 뭉쳐서 돌아다니는 것 같다.

평생 백조로 살다가 까마귀가 되었다.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조회 시간이면 운동장에 모이듯(요즘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조회를 할까요?) 온몸의 열이란 열이 시도 때도 없이 등으로 모였다. 그 열 덩어리는 등 뒤에서 출발해 목을 타고 머리에서 얼굴까지 올라오면 헐크가 된다.

그 순간에 누군가 반기를 들거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까~악 까~악 깍깍깍

어머!! 지금 이 소리가 내 입을 통해서 나온 게 맞나?

난 분명 백조인데 왜 갑자기 까마귀 소리가 나오는지 당황스럽긴 가족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신혼 초부터 거래처 핑계를 대며 자주 술에 취해 들어오던 남편. 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집 앞에서 나를 보면 어 ㅇ ㅕ 여 여보다! 그 순간부터 다리가 풀리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집이 이층에 있어서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양말과 옷을 벗기고 얼마쯤 지나면 속이 불편한지 뒤척임이 심해 옆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다 깨기를 반복, 다음날 출근하면 얼마나 피곤했던지.

점심시간에 전화하면 목소리가 다 죽어가곤 했다. 해장국을 먹여야만 속이 풀리기 때문에 사기도 하고 집에서 만들기도 해서 일단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야 나도 편했다.

밉기도 미웠지만 힘든 몸부터 회복시키는 일이 우선이었다. 하루 이틀 살만하면 또 취해서 귀가하기를 반복했다.



그때의 고단함을 보상받고 싶었을까?

갱년기가 나를 지배하자 백조 같은 순둥이가 아니라 남편이 신경 거스리는 말이나 행동하면 몸속의 열이 한 덩어리로 뭉쳐 등을 암벽 등반하듯 올라탈 때 터지는 소리는 까마귀 친구들쯤 되는 것 같다.

그 순간 내 입 밖으로 나온 소리에 서로 적응하지 못하고 자리를 서둘러 피했다.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가족들은 또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을지.

거기다 잔소리하면 불덩이의 열은 더 위로 치솟으며 화산이 폭발한다면 지금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편을 우리 가족은 백과사전이라고 불렀다. 역사나 세계사는 물론 영어단어도 아이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아이들 고등학생 때까지)

무엇이든 물어보면 설명도 기가 막히게 잘했고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처럼 이해하기 쉽게 전달했다.

성경책도 기독교, 천주교, 여호와증인 등 종류별로 여러 번 다 읽고 각 성경책마다의 차이점도 설명해 줄 때는 멋있었다.

요즘은 뭔가 질문해서 설명이 길어지면 결론만 말하지, 핵심을 어디 두고 빙빙 돌리냐며 화를 내는 까마귀가 되었다.



직장 다닐 때 상사가 퇴근 후 직원들 밥도 잘 사주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처럼 보여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내가 갱년기가 왔는데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며 그의 아들과 딸도 아내가 잠들면 집에 들어간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때 우리 직원들은 에이 설마요. 그렇게 착한 분이 갱년기라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설마가 아니었다. 내가 나를 컨트롤하기 쉽지 않았다. 지난 세월 동안 나를 섭섭하게 했거나 힘들게 했던 사람일수록 까마귀 탈을 뒤집어썼다가 다시 백조가 되는 1인 2역을 하느라 고단한 나날이었다.




한 줄 요약: 갱년기가 쳐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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