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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Jul 26. 2021

화장을 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좋아!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보석은 단 한 가지도 그 흔한 반지 한 개도 없다.

결혼 패물로 받은 다이아반지를 포함해서 몇 종류의 보석들을 어머니에게 모두 드렸다. 어머니는 결혼 패물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이고 어머니는 보석을 좋아하셨다. 남편이 조금 섭섭해하기도 했지만 이해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지만 손가락에 뭔가를 낀다는 것이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웠다.

보석보다는 바닷가에서 파도가 만들어준 둥그렇게 다듬어진 돌멩이가 눈에 들어오고 만져보고 싶고 주머니에 넣고 싶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또 나에게 반지를 선물했다. 성의를 생각해서 며칠 끼었지만 손가락이 불편하고 보기도 싫고 만지기는 더욱 싫었다. 그 후로는 남편도 더 이상 보석 종류는 선물도 하지 않았고 착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는 수영장도 주 5일 다니고 새벽이면 테니스를 치고 출근을 하기 때문에 운동복 차림으로 출근하는 일이 거의 매일이었다. 한 번은 여직원 탈의실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저렇게 살면 아마 결혼하기는 힘들 거라는 말들을 했다고 한 직원이 나에게 말해 주었다. 심리상담 중인 동생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나의 무의식에도 균열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들, 보통의 여자들이라면 화장은 기본, 반지나 목걸이 몇 개쯤은 가지고 있고 착용하기도 하는데 왜 나는 하지 않을까 아니 왜 싫어할까?

화장은 결혼식 날 한번 했었고 특별한 장소에 갈 일이 있을 때면 약하게 라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 화장을 하지 않을까? 화장 후 낯선 모습의 나 자신이 싫고 왠지 어색하다는 이유였다. 늘 운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라서 여러 가지로 화장은 불편하다는 생각. 번거로운 일을 굳이 시간 들여서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트리우마는 숨바꼭질을 잘한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꼭꼭 숨어 있는지 방어기제를 이용해서 핑계 만들고 달리기도 잘해서 도망도 쉽게 간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해 참으로 많은 말을 했다. 그중에 하나도 무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다. 10%가 물 위에 90% 정도가 물 밑에 있는 빙산의 구조. 무의식의 세계를 90% 정도로 비유하는 말이다. 그 무의식의 세계는 소리 없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하며 정신분석 또한 무의식에 의해서 나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라고도 했다.

아빠의 외도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어머니는 내 여동생을 출산하셨고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을 작은어머니라고 불렀다. 그 작은 어머니가 첫딸을 출산하고 2년 후 아들을 낳았다. 작은어머니는 처음부터 분가해서 살았다. 자주 왕래도 했고 표면상으로는 다들 잘 지냈으므로 특별히 좋지 않은 기억은 없었다. 가끔 우리 세 자매는 작은어머니 집에 놀러 가기도 했고 5명이 잘 놀고 잘 지냈다. 어머니는 막내아들만 보면 얼마나 흐뭇해하셨던지 자신의 아들이라도 된 것처럼 그랬다. 그 부분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내가 딸이라서 시작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들이었다면 작은어머니도 필요 없었고 우리 가족은 더없이 행복했을 텐데 라고 결론 내린 어린아이가 또 내 무의식에서 초라하게 숨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이 작고 겁이 많은 어린아이에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어떻게 위로를 하고 손을 잡아도 될지 말문이 막혔다. 내 눈 속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어디에 있었을까? 끝도 없이 흐르다가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몸살을 앓았다. 2주 가까이를 누워서만 지냈다. 일어설 수도 없었고 온 몸의 에너지가 다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심리상담사와 통화를 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축하한다며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며 수치심이 있다면 그 또한 부모님의 수치심이지 나의 수치심이 아니라고 했다. 평소 질문만 하던 상담사에게 처음으로 듣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만일 아들이었다면’ 이 무의식의 생각이 의식에서는 여성들이 당연히 하며 사는 일들을 할 수 없게 아니 귀신이 내 몸속에서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게 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뼛속부터 아들이고 싶었다. 지난 많은 시간들이 지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자식이 아니라서 일까? 아버지는 사주에 아들이 없다는 어느 점쟁이의 말이 맞아서일까?

작은어머니 큰딸은 사기 결혼을 당해서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유일한 남자였던 막내 동생도 21살의 젊은 나이에 사고로 사망했다.

무의식에 있는 나와 만날 때마다 이렇게 힘들고 눈물바다가 되는데 그래도 출발한 여정이니 가야겠지만 늘 망설여지고 무시하고 덮고 싶다. 그러나 하나하나 알고 난 후 가벼움의 유혹에 넘어가 보기로 했다. 이유도 모르고 했던 행동들, 지난 시간들, 프로이트 말처럼 소리 없이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무의식의 나를 분석해서 나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

조금씩 뭔가 가볍고 가벼워져가는 나의 무게를 느낀다.

남편이랑 타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화장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지만 딸에게 선물 받은 립스틱을 바르고 차에 탔다. 남편이 웬일이냐며 눈이 커지더니 함박미소로 예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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