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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Nov 22. 2022

둔한 것이 아니라 바보라고?

사는 이야기

저녁을 일찍 먹고 집 근처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였다.

핸드폰도 지갑도 없이 워낙 가깝고 서로 왕래가 자주 있는 친구라서 부담 없이 출발했다,

친구와 영화(넷플릭스)도 보고 아이들 이야기도 하고 동티모르에서 호주 남자를 만난 연애 이야기도 들었다.

친구는 아이 둘이 있는 상태에서 J와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 그 딸이 2개월 때 우린 이웃으로 처음 만났다.

그리고 한 6개월쯤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밤 그녀의 집 앞에 경찰차가 왔다. 너무 놀란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J가 술에 취해 그녀에게 소리를 질러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출동 즉시 집에서 J를 내보냈다.

그리고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또 6개월이 지나갈 무렵 그녀는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고 그녀의 자녀는 총 4명이다. 3명의 남편에게서 출산한 4명의 자녀가 2주에 한 번씩 두 번째 남편이었던 J의 집에 1박 2일로 다니러 간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집으로 출발했다. 한 반 정도 왔을까! 그녀의 집과 우리 집 중간쯤이었다. 차가 갑자기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속도가 줄어들더니 멈추었다. 뛰어난 운동신경 탓에 반쯤 갓길로 걸치고 있는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 차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주유해야 하는 걸 깜빡했다.

일단 비상 라이트를 켜고 전화기를 찾으니 없었다. 헉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감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건너편 차선에 차 한 대가 잠깐 쳐다보는 듯 가다가 유턴해서 내게로 왔다. 순간 너무 감사하고 반가웠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남자였고 혼자였다.


남자:무슨 일이야?

나: 내 차에 기름이 떨어져서 차가 섰어.

남자: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나: 우리 집에 전화 좀 걸어줄 수 있어?

아들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계속 통화 중이었다. (다른 가족 번호는 생각나지 않았음)

남자: 내 생각에는 너 아들이 통화가 길어지는 걸 보니 여자 친구하고 통화하는 것 같아 ㅎㅎ 너희 집이 어디야?

나: 여기서 한 5분 정도 좌회전해서 가야 해.

남자: 그럼 내 차로 너희 집에 가자.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설마 차에 탔다가 납치! 살인!!

내 얼굴에 티가 났는지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보는 남자. (남편은 내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 수 있다고 늘 말함)

드디어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나를 바꿔주지도 않고 상황을 설명하는 남자.

이제 연락됐으니 그만 가보라고 했지만,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 10분 후 주유통을 들고 도착한 남편과 아들에게 인사한 그는 '너 여자 친구랑 통화했지?'라며 농담 반 진담 반 웃으며 말을 걸었다.

놀라지 않았냐는 아들 말에 그때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차에 앉았다.

집에 도착해서 그에게 감사 인사 겸 전화했다. 당연한 일이고 누구든 서로 돕고 사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오늘이 주유 건으로 당신을 돕는 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 주유 건으로 도움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왜 갑자기 기가 죽는 걸까?




첫 번째는 내 차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이리저리 얼마나 끌고 다녔든지 엄마나 다른 가족들한테 가고 싶은 곳 있냐며 묻고 또 묻던 시절이었다.

언니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차가 멈췄다. 처음 겪는 일이라 엄청 놀랐다. 다행스럽게도 가까운 곳에 형부 공장이 있어서 형부가 주유소까지 견인해 주었다.




두 번째는 아침에 시동을 거는데 걸리지 않았다. 구입한 지 1년 미만이었을 때였다. 고장 날 이유가 없었다. 혹시 기름 떨어진 거 아니냐는 남편의 말에 계기판을 봤더니 맞았다. 보험회사에 연락했고 30분 정도 만에 해결되었다.

꼼꼼한 성격인 남편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의 머릿속이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머릿속을 남편이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세 번째는 운전 중에 다음 주유소가 나오면 주유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가는 데 전화가 왔다. 통화가 한 시간 정도 이어지다 보니 주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차가 또 멈추고 말았다. 다행히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막 빠져나온 갓길에 차를 세우고 무거운 입을 조심스럽게 열며 보험회사 직원의 친절하고 상냥한 인사를 받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죄송한데요 제 차에 기름이 떨어진 것 같아 연락드렸어요.

에구 고객님 얼마나 불편하셨어요!

보험회사 직원이 이 서비스는 일 년에 한 번만 무료이므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미안한 상황에 출동 비인지 주유비 인지 뭐라도 차주가 부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네 번째는 여수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길이었다. 다음 휴게소에서 주유하면 되겠다고 계산하고 도착했는데 주유소가 없었다. 휴게소에 주유소가 없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가장 가까운 IC로 나갔는데 지방이라서 그런지 근처 주유소를 검색했지만 11km 떨어진 곳이 가장 가까웠다. 드디어 주유소가 보였다.

한 5백 미터쯤 남았을까? 덜커덕 차가 또 멈췄다.

걷기에도 충분한 거리이므로 주유소에 도착해서 내 차를 가르키며 주유 가능여부를 물었다.

지금은 차들이 모두 배달 중이라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바로 옆 마트에서 10리터 주유통을 사서

들고 가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런데 옆에서 주유를 마친 차주와 주유소 직원이 아침 인사를 하는데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왠지 도움을 청해도 안전할 것 같았다.

그 차주에게 내 차가 저기 있는데 혹시 그 길로 가면 태워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침 그 길을 지나 출근한다고 했다. 그는 임실군청 공무원이라며 반대편 차선에 있는 내 차까지 유턴해서 태워다 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나는 다시 주유소에서 배부르게 기름을 채우고 여수로 출발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다섯 번은 좀 심했다. 나의 부주의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내 인생에 기름이 떨어져 차가 정지할 일은 맹세컨대 앞으로는 없지 않을까?

요즘은 계기판에 주유하라는 신호가 나타나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주유하고 있다.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리라!!


이 말은 취소해야겠다. 생각해보니 너무 무섭다.

모르긴 해도 나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있다면 손 들어보세요.~~


한 줄 요약: 미루는 습관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위험한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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