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도움의 제안, 보호의 제안이란 늘 거절의 가능성을 수반하고, 문화에 익숙한 도시민들은 거절당하는 일에도 익숙했다. 상대방이 ‘노약자’로 분류된 사람에 속하지 않아도, 짐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리를 권하고 싶은 마음에 한 번 일어났다가 거절당하고 다시 앉는 것이다. 평소의 한국이라면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찬탄을 하고 스스로 실천하고 싶다 해도, 감수성이 달라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도시민의 문화’ 이전에 젠더 권력적 역학이 작용할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내 의도가 종종 오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라면 '내가 임산부처럼 보이나?'라든가, —우리의 어머니들은 일정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혹여나 자리를 양보받을까 두려워하며 염색을 상당히 열심히 한다.—, 젊은 남자라면 또한 얼마나 이상한 광경으로 보이겠는가…. 오해가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나를 괴롭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파리에서 본 방식으로 매일 살기 시작한다면 말이다. 그래도 일상적인 거절이라니, 그런 건 하루 중 계획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에 속한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거절을 자주 하는 일은 좀 피곤할 수 있지만, 아주 조용히 거절당하기가 계획되어 있는 하루는 마치 가장 고운 입자를 지닌 아름다운 색의 모래시계처럼 보인다. 모래시계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모습이 바뀐 뒤에도 바뀌지 않는다. 통로를 흘러가는 그 순간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무용하다. 그런 시간쯤은 모래시계가 아니어도 잴 방법이 많아졌으니까. 그래도 나는 찻집에서 모래시계를 함께 줄 때마다 마음을 빼앗기는데, 그렇게 아름답게 흘러가는 시계는 세상에 없으니까!
제주에서 돌아왔을 때는 3 kg이 증량된 상태였다. 그리고 심적으로 여느 때보다 안정되었다. 어쩌면 여행을 했던 기간보다 서울로 돌아와서의 증량된 나날이 더 인상 깊었는지 모른다. 나만의 중심이 생긴 듯했고 그건 당연히 시간과 기억의 무게였을 테지만, 굶지 않은 시간은 더 무겁게 쌓였다. 이내 전과 달라진 몸의 느낌이 불편해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었지만. 무거워진 시간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아주 좋은 기분만을 일으켜 매일 나를 움직이게 했다. 시간은 우리가 조종하는 물체가 아니라 흐르는 형태로 놔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짙어진 듯했다. 인생에서 단지 계속 바라왔던 그 시간- 내게도 밖에 나가거나 나가지 않을, 두 가지의 선택지가 모두 존재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
역학이 먼저 작용할 것이다. 역학 : 1. 물체의 운동에 관한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2. 부분을 이루는 요소가 서로 의존적 관계를 가지고 서로 제약하는 현상. 내가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들 사이의 역학은 재빠르거나 매끈하지 않고 어딘가 게으른 종류의 것이다, 하품이 많이 나올 것 같은. 여행에서 알 준비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어디를 갈지 알게 되면, 그때 알게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때까지의 시간은 전혀 다른 용도의 것이지 불안의 시간이나 준비의 시간이 아니다.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놔두어주기를……. 비가 오는 주말을 더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누군가에게 충격이 될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각자의 여행 사이에서 계획 없이 함께 보내는 주말이 더 귀하게 여겨진 사실을 서울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늘 떠올린다. 단지 그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귀했어. 어쩔 수 없이 제약이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누게 되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