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첫날에는 숙소에 닿기만을 고대하며 위축된 채로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동일주로버스에서 만난 기사님께서 제주의 버스기사님답지 않게—원칙을 모르거나 철없는 육지의 관광객이 많아 때때로 감정은 삭제되고 경계상태라고 보였던—따뜻하면서도 섬세한 어조를 지니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왠지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숙소는 고양이 두 마리와, 서울에서 내려와 제주에 정착하신 젊은 호스트 한 분께서 거주하시는 곳이었다. 처음에 나는 호스트와 한 공간에서 ‘셰어 하우스’ 하는 점 때문에 행동이 어색해질 것으로 여겼는데, 반나절 정도만이 지났을 때 이미 그곳이 편안했다. 혼자 쓰는 숙소보다도. 아마도 이곳 주인들의 기질 때문인 듯했다.
호스트 언니는 일찍 외출하지 않는 날 아침이면 프랑스어로 된 재즈음악을 그녀의 집안에 크게 틀었다. 그리곤 진녹색 잠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스스로 애정 어리고 편안해 보이는 상태에서 나와 아침 인사를 하고 새로 올 손님방에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침구를 빨고 수건을 분배하고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었다.
검은색 암컷 고양이인 희소는 첫날밤부터 새롭게 등장한 꾸러미들과 그것이 닿은 방바닥의 냄새를 조사하듯 샅샅이 맡더니, 그날로 내 침대 위에 올라와 함께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부터는 화장실에 같이 가는 사이가 되었다. 주로는 내가 손을 씻거나 세안을 할 때 옆에서 물장난을 하기 위해서였다.
흰검이 섞인 수컷 고양이인 베로는 종종 이유 없이 거실부터 내 방을 가로질러 달렸고, 희소에게 장난치고 좇기도 하면서 집 안의 생동감을 유지했다. 그는 활동성이 높아서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집을 나가기도 했다.—거의 마당으로 나간 것이지만 시골이라 위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손님들에게는 외출할 때와 들어올 때, 고양이들을 안아 올려 방에다 잘 넣어둘 의무가 있었다. 하루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 주거나 실수로 탈주한 고양이를 잡아와야 하는 그런 할 일이 매일 생겼다.
내겐 그곳에서의 생활이 ‘집 같았다’. 세 명, 아니 손님까지 네 명의 구성원에게 각자 할 일이 있고 그것들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형태.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에 안전을 보장하는 일정한 의무 속에서 꾸려나가는 일상. 가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창밖으로 거세게 지나가는 제주의 바람을 안온하게 바라보고 있자면, 서로의 존재에 감사해지는 공간. 집 같은 공간. 집.
어떤 소망과 눈길들이 모여서 세워진 집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온 세상에 내려버린 폭설 같은 것을 치워나갈 때, 서로 바라봐줄 수만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졌다. 상대가 무사히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가끔 어디선가 좀 더 나은 삽을 얻어와 서로에게 선물해버리기도 하는 두 사람. 어떤 날에는 둘 다 삽이 부러지거나 해서 없고, 또 어느 날에는 이제 더 이상 눈을 치우지 않겠다며 함께 결심하는. 이따금 상황들로부터 도망을 치게 되고 그러면 걱정이 드니까, 일상을 오고 갈 때 상대의 안위를 챙길 일정한 의무가 생겨버린 아이들. 우리는 여행에서 만났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