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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Sep 11. 2021

결론은 돈이 필요하다는 거다

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1월 19일  재태주수 24주 생후 10일


현대의학 최전선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우리 아기는 다양한 조치를 받으면서 한 시간 두 시간 살아내고 있다. 연구가 주목적인 대학병원답게 현재 임상실험 중인 실험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해주셨고, 실험 중인 약과 플라시보약을 투여한 후에 몇 년 후에 결과를 지켜보는 거라고 하셨다. 아주 사소한 약품에도 민감한 사람들이 아기 엄마들이겠지만 우리는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먼저 신약의 혜택을 받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제발 플라시보가 아닌 진짜 약을 받아서 생존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길 바랬다. 아기를 지키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뭐가 옳은 선택인 줄 모르고 그냥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선택은 내가 하는데 과정과 결과는 아기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두렵다.


다른 아기들의 예후를 찾아보니 뇌에 이상 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뇌성마비 혹은 사망까지도 가능한 상황이다. 아기가 뇌성마비가 온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론은 돈이 필요하다는 거다. 캐나다 유학시절 나의 하숙집 아주머니의 직업이 사회복지사였는데, 정부에서 집을 사서 한 집에서 대여섯 명의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살게 하고 거의 한 명당 한 명의 담당 복지사가 돌보는 시스템이었다. (야간에 상주하는 한 명의 직원이 있고 복지사들은 일반적인 근무시간만 지키면 된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담당하는 환자분은 70대로 나이가 많으셨는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셨지만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기품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하숙집 아주머니 말로는 그 여성분께서 꽤 어린 나이부터 아프셨지만 부모가 부자라서 유산을 많이 남겨주어 지금도 필요한걸 모두 사버릴 수 있는 재력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1:1 케어가 가능한 곳에 머무를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사실 남편과 나는 우리의 노후까지는 책임질 자신이 있었다. 둘 다 물욕이 많지 않아서 남들보다 많지 않은 돈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우리는 대신 돈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고 온전한 자유를 선택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있는 커리어가 망가졌을 때 언제든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기준점을 많이 낮춰놓고 살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직장이나 직업에 심적으로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노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답이 없었다. 택도 없었다. 이제까지 자유롭게 산 내 인생을 모두 부정하고 싶었다. 일찍이 돈 제일 많이 주는 곳에 취업해서 갭 투자던 뭐던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을 기웃거리며 돈을 최대로 벌었어야 했다. 결국 내가 이제까지 선택한 건 돈이 최고라는 사회를 비웃기 위한 알량한 자존심을 위한 삶이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존심 세우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양가 부모님 재산이 정확히 얼마 정도인지 계산해봤다. 늙은 부모 돈 뜯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드라마 속 비루한 인물이 바로 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21년 1월 21일  재태주수 24주 생후 12일


뇌 초음파를 봤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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