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인 Aug 24. 2021

가능한 병명들

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1월 18일  재태주수 24주 생후 9일


이틀에 한 번씩 주치의 선생님께 전화가 왔고 나는 기억도 다 못할 만큼의 가능한 병명들을 들었다. 23주 2일생인 우리 아이가 가지고 있고 갖게 될 가능성이 높은 병명들은 다음과 같았다.


기관지 폐 형성 이상: 폐는 임신 26주 정도에 생기는 장기이므로 23 주생인 우리 아이는 폐가 거의 안 자랐다고 볼 수 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하고 폐포가 자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산소치료가 폐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폐가 성장하는 속도가 손상받는 속도보다 빨라야 호흡을 유지할 수 있다. (폐성장> 폐손상) 폐는 5~6세까지 성장하기 때문에 5~6세까지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 

무호흡: 호흡을 관리하는 뇌중추가 발달되지 않아서 호흡을 하지 않는 것. 한마디로 뱃속에서 숨 쉬는 능력을 배우고 나오지 않아서 숨 쉬어야 하는 걸 까먹고 안 하는 거다. 병원에서는 모니터기를 부착하고 무호흡이 생기면 알람으로 알려준다. 아기가 무호흡이면 발바닥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때리거나 아기를 흔들어 깨우는 등 자극을 줘서 숨 쉬게 한다.

동맥관 개존증: 태아는 뱃속에서 피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기 때문에 피가 폐를 거쳐 동맥관이라는 혈관을 통해 이동한다. 만삭아의 경우 태어남과 동시에 동맥관이 자동으로 닫히지만 이른둥이(미숙아)의 경우 닫히지 않는다. 심장 및 폐기능을 방해하며 악화시킨다. 기다리면 몇 달 안에 자동을 닫히기도 하지만 닫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닫히지 않더라도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나중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가장 위험에 빠지게 하는 요소 중 하나.

황달: 꼭 미숙아뿐만이 아닌 일반 신생아에게 많이 일어나는 병. 비교적 쉽게 치료된다.

괴사성 장염: 미숙한 장이 약해지고 손상되는 경우. 배가 부르게 되고 수술하게 된다. 손상된 소장 부분을 모두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제거 길이가 길수록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받는다.

탈장: 복강 내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서 탈장이 생긴다. 이른둥이가 탈장될 가능성은 확률이 매우 높고 남자아기의 경우 수술하더라도 또 생길 가능성이 높다.

감염: 모든 종류의 감염. 우리 아기는 혈액 내 곰팡이균이 발견되어서 항생제를 오랫동안 투여했다. 패혈증으로 발전 가능하다. 피를 타고 다른 장기로 옮겨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뇌실 주위 백질 연화증: 혈압 저하와 혈류 흐름에 영향을 받아 저산소성 손상을 받기 쉽다. 증세라고 확정되진 않았지만 초음파 검사상 뿌옇게 보인다고 소견 받음.

미숙아 망막증: 산소치료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모세혈관이 안구 전체에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망막 성장에 방해를 받는다. 주사 시술과 레이저 시술 후 돌 전에 안경 쓸 가능성이 매우 높음

영아 돌연사증후군: 돌연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갑자기 죽는 걸 의미한다. 언제 어떤 이유가 생길지 모른다.

혈전: 혈관 내 피떡이 생겨 원활하게 피가 공급되지 않아 주변에 있는 장기에 피 공급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피를 묽게 하는 약물을 사용할 경우 폐 쪽에 피가 들어갈 수 있어서 약을 사용하지 못하고 아기가 성장하면서 혈관 자체가 더 커지기를 바라야 한다.


제대로 완성되어 있는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고 한 가지를 해결하기 위한 약물이나 치료방법이 다른 장기에 손상을 입히는 식이라서 뭐하나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손상된 것 이상으로 성장하는 게 아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무조건 아기 편이다. 지금 당장 5분이 지나면 그만큼 아기의 생존확률이 더 높아졌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생존 자체에 이렇게 열심히였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동안 중요하던 인식적 정신적 가치가 모두 의미 없게 느껴졌다. 주말에 아기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전화를 받았다. 하필 남편이 모유를 가져다주러 병원에 간 시간이라 나 혼자 있었는데, 그동안 안심하려 애쓴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두고 가지마

이전 09화 차마 기도는 할 수 없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