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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Aug 19. 2021

현대의학 끄트머리에 겨우 아슬아슬하게

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1월 10~13일  재태주수 23주  생후 ±72시간


아기를 낳고 회복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놀랄 정도로 난 회복이 빨랐고, 다음날 바로 아기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아기를 보기 전에 교수님과 주치의 선생님과의 면담이 먼저 있었다. 의과학자인 이분들이 나에게 자꾸 아기가 벌써 24시간 버틴 게 기적이라고 하고, 아기한테 힘을 많이 줘야 한다고 하고, 엄마가 슬퍼하면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애기도 다 알고 영향받는다고 하는 등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셔서 현대의학 끄트머리에 겨우 아슬아슬하게 있다는 걸 눈치챘다.


의사 선생님들께 얘기들을 땐 눈물이 났었는데, 막상 아기를 만나보니 멀쩡해 보였다. 아직 임신 23주 차에는 지방이 생기기 전이라 성인과 같은 신체비율이라서 더 미니 인간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얌전히 있다가 내가 말 거니까 왼팔을 휘적휘적거리면서 잘만 움직였다. 눈에는 황달 치료 때문에 뭘 씌워놓고, 입에는 산소호흡기를 달아놔서 그런지 코밖에 안 보였는데 코가 큰 게 남편을 닮았다. 그 작은 손에 손금까지 다 완성되어 있길래 생명선을 유심히 쳐다봤다. 생명선이 아주 길어서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미신밖에 의지할 게 없는 내가 불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벼락 맞은 태몽까지 꾼 아기인데 쉽게 멀리 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아기가 태어나기 전 3개월 동안 탯줄을 통해서 엄마의 면역력을 모두 받고 태어난다고 한다. 우리 아기의 경우 면역력을 못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의 초유를 72시간 안에 꼭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특히 이른둥이를 (미숙아) 낳은 엄마의 모유에는 만삭아 엄마의 모유보다 이른둥이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더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몇 시간이라도 빨리 모유가 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넷과 유튜브 보면서 마사지해봤는데 아직 내 몸이 아기가 나왔다는 걸 이해 못 한 것 같았다. 유축기를 사서 시도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신생아 중환자실 전문간호사 선생님께서 이틀 동안 내 병실 침대까지 와서 마사지를 해주시자 겨우 겨우 열 방울 정도 나왔다. 새벽에 가슴 마사지할 때까지만 해도 과연 될까 싶었는데 정말 이게 되다니.. 그렇게 어렵게 짜낸 초유는 빈주사기에 담아서 아기 입안에 살짝 넣어주면 침과 함께 아기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입원해있는 동안만 면회가 가능하다고 해서 최대한 많이 보고 싶었는데 그마저 쉽지 않았다. 남편과 아기를 보고 있는 중에 아기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의료진이 위급하게 조치를 취했다. 우리는 거기에 서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걸어 나왔다. 이런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고 있겠지..


첫 번째 고비라고 했던 72시간이 지났다.

태어난 날과 그다음 날 사이에는 정말 좋지 않아서 일산화 소도 투입했었는데 이제 떼고도 안정적이라고 하셨다. 초유 양도 제법 늘어서 생기는 족족 아기에게 가져다줬다. 이제 내일 오전에 퇴원하면 더 이상 못 만난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남편은 우리가 면회 금지된 만큼 다른 외부인들도 출입 못하니까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는 아기들 모두 감염으로부터 더 안전할 거라고 위로했다. 이렇게 우리 둘이 있으면 힘이 되었는데, 남편이 밥 먹으러 잠깐 나간 사이에도 나는 너무 우울해졌고 남편도 밥 먹으면서 울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남편은 입원기간 내내 먹을걸 사 와서 내 옆에서 먹었다.


아기를 낳을 때까지 성별을 모르던 우리는 아들일 경우 딸일 경우를 대비해 미리 이름을 지어놨었는데, 수원 토박이인 남편이 정조의 본명 '이산'이란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아들을 낳게 되면 꼭 '이산'이라고 짓겠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그러라고 했었다. 십 년 전에. 전에도 말했듯이 그가 속한 실험실은 레이저를 다루고 있었고 그 레이저 때문인지 Y염색체가 쉽게 파괴되어 그 실험실 선배들은 모두 딸만 낳았기 때문에 나는 어차피 딸 낳게 될 거 아들 이름은 남편이 뭐라고 짓고 싶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쿨한 척 놔뒀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예고 없이 아들을 낳게 되니 딱히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고, 아기 이름을 빨리 지어서 출생신고를 해놓으면 아기가 멀리 안가지 않을까 싶어서 바로 이산이라고 짓기로 했다. 작명소 같은 데 가고 싶기도 했지만 혹시나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될까 봐 작명 어플에서 아기 생시와 장이산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한자만 찾아서 이름을 지었다.


우린 부모가 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있는 애기를 세상에 없는 척하기 싫어서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SNS에도 올렸다.

이산이는 태어났고, 삶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퇴원 날.

초유를 들고 아기를 보러 갔다. 이제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눈물이 나왔다. 아기를 볼 수 있는 단 몇 분을 우는데 허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기는 아직 먹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내가 새벽에 준 초유를 입에 묻혀놔서 입에 거품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기한테 힘들다고 정신 놓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벌써부터) 훈육하고, 살아남으면 서른 살에 꼭 포르셰 사준다고 약속했다. 아들이니까 포르셰 때문에라도 세상에 붙어있고 싶지 않을까


아무 준비 없이 나간 2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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