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혜 Aug 02. 2024

한국어 주어와 목적어가 없다.

고맥락 커뮤니케이션 문화 ;  주어 목적어를 찾아라. 

 투자사와 전문가 간의 실사(due diligence) 통역을 해왔다. 내 전문 분야는 e-commerce, 반도체, 장비, 설비 등 엔지니어링과 IT 분야이다. 최근에는 강의와 워크숍 관련 업무가 늘어나면서 통역할 기회가 많이 줄었다. 

통역에서는 사전 학습과 배경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 통역사 간의 차별화는 전문 분야에 따라 이루어진다. 나는 기술 전문 통역사로 포지셔닝되어 있었고, 이 덕분에 국내파임에도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최근, 반도체 관련 VC(투자사)와 전문가 간의 통역 의뢰를 받았다. 반도체 관련 통역은 한동안 하지 않았지만, 용기 내어 일을 맡았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최신 기술 용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00의 전망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이유는 수요가 증가하고 관련 기술이 발달하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을 전문가가 했다고 치자. 한국어로 듣기에는 별 문제없는 문장이다. 

이 한국어 답변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없다. 영어로 번역할 때는 문맥을 정확히 이해하고, 주어와 목적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반도체의 산업 성장인지, 특정 기술의 성장인지 정확한 주어를 찾아야 하며, 관련 기술이 반도체 관련 기술인지, 특정 분야 기술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인지도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구분은 대화의 문맥을 통해 파악해야 하며, 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통역을 잘 못했다’고 평가한다. 배경 지식이 많아서, 주어 목적어를 제대로 찾아서 질문하지 않고 따박따박 넣어서 통역을 해내면, 사람들은 ‘통역을 잘했다.’고 평가한다. 

이렇듯 사람들은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하지 못한다. 다만 해야 할 역할을 잘 해내는가 아닌가로 그 사람의 실력을 평가한다. 


어떤 고객은 아는 영어 단어를 마구 붙여서 외국인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럼 외국인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힘들어한다. 

예를 들어 ‘America go, machine sell very very happy ”  이 말은 ‘미국에 가서 고객에게 기계를 팔았는데 고객이 만족했다’는 한국말을 아는 영어 단어들로 만든 문장이다. 한국어로 바꿔 보면 문장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없다. 즉 누가 미국에 갔는지, 누구에게 팔았는지 없다. 

 이 문장을 영어로 다시 통역하면 “He went to America to sell the machine, and the customer who bought his machine was very satisfied with his machine.’이다. 주어와 목적어를 찾아서 넣어야 한다. 

한국어는 이렇게 주어와 목적어가 없어도 문장이 되고 빠르게 파악하여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전문가의 정보를 전달하는 통역사로 전문가의 한국어 스타일이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하지 않은 습관을 가졌고, 최근 반도체 정보를 제대로 학습하지 않는 상태의 나는 그 문맥을 빠르게 읽어 내지 못했다.  


한국어는 이렇게 다른 언어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서 더 많은 배경 지식과 문맥적 정보가 요구된다. 

그래서 한국인은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 습관을 이해하려 하고, 개인적인 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고, 문맥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은 수직적 관계와 고객과 공급자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하다. 

나는 이번 통역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지만, “고객이 주어와 목적어 없이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졌어요’ 즉 '개떡같이 말했어요'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면 한국어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문장에 주어 목적어 없이도  문장이 되고 대화가 가능하니까! 결국 배경 지식 학습을 더 하고, 그 말들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했다. 




작가의 이전글 탓하기 편향 방지 : 실수를 끝까지 드려다 보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