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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의 혁신을 보여준 MZ 세대

서로의 즐거운 연대는 뜻하는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할 수 있다

by 김지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2024년 12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 처리됐다.

중학생인 둘째는 기말 시험기간 동안 계엄령을 겪었다. 시험을 마치고, 주말에 친구들과 시위현장에 가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나에게 시위현장에 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무엇 때문에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아이의 대답은 '그냥 현장을 가보고 느껴보고 싶다"라고 했다. 어떤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그 현장을 느껴 보고, 경험하고 싶어서다.

시위 현장에 가는 것을 허락했지만, 아이는 가지 못했다. 왜냐면 시위현장에 가기로 한 전날,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기 때문이다. 축제 분위기 같은 그곳에 있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이는 많이 아쉬워했다.

이제 시위는 하나의 체험현장과 같다. 나와 같은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으로 그 뜻을 함께 주장하는 이벤트이다. 시위 현장은 더 이상 위험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 속 시위 현장은 안전하지 못했다.

나는 X 세대로 대학교 시절 대학생들의 대모가 점점 줄어들 시기에 학교를 다녔지만, 딱 한번 대규모 시위로 화염병과 최루탄 가스가 학교 정문 앞에 난자한 광경을 경험했다.

나는 최루탄 가스에 괴로워 학교 앞 건물 3층 커피숍으로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최루탄 가스냄새는 그 3층까지 올라왔다. 당시 운동권이라는 말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에 반하며 시위나 데모를 하는 친구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우리 학과에 운동권 친구가 딱 한 명 있었지만 가끔 수업에 들어오고 보기 힘들었던 친구였다.

대학교에 입학 후 여러 동아리를 찾아보다가 풍물을 배우고 싶어서 풍물 동아리에 들어갔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풍물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하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풍물 동아리는 대부분 이런 운동권 친구들이 많고, 대모 현장에서 맨 앞에서 북을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권이나 정치엔 관심이 없었고, 다만 풍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풍물을 계속할 거면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만큼 전후 세대인 나의 아버지 세대에 있어서 대모, 시위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들의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며 살아가던 그 시기 목격한 대학생들의 시위는 전두환 군사 정권 저항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다.

당시 삼청교육대라고 하여 전두환 정권이 체제하에 사회정화운동(사회악 일소 캠페인)으로 치안과 사회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강제 수용소도 있었다. 실제로는 정권에 반대하거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있을 만큼 이유도 모른 채 잡혀가 강제 노동과 육체노동, 구타, 가혹행위를 겪은 이들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정부는 시민이 정부에 반하면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강제 수용소에 데려갈 수 있는 존재였다.

풍물 동아리를 할 거면 어렵게 들어간 대학임에도 그만두라고 한 것은 자식의 안전에 대한 우려였다.

나는 아버지 몰래 한 달 정도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실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선배들도 있었고, 시위현장을 다니는 선배들도 존재했다. 나는 순수 풍물 악기 연주를 배우고자 한 달 정도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전후 세대인 나의 부모 세대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쁜 그 시절, 바라본 다음 세대는 바로 386 세대였다.

대구에 살았던 내가 유치원에 다닐 당시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지만, 철저히 통제된 언론은 어디에서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차로 3~4시간이면 가는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한 채 나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386 세대의 민주화 운동은 정부의 만행에 맞서고, 최루탄을 쏘는 군인과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을 던져 저항하던 세대이다.


X세대인 나는 전후 세대인 부모가 이루어 경제 성장의 혜택과 386 세대가 이루어 낸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 성장했다. 내 부모와 같이 배고파본 기억은 없지만 1997년 외환위기(IMF) 당시 사회 초년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 겪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왔더니 무능한 정부로 인해 IMF 위기 사태를 수많은 회사들이 부도가 나고 취업을 하기 힘든 시대에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정치적 상황보다 급 변화된 경제적 상황에 적응이 더 큰 과제였다. 내게 데모와 시위는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부모의 가르침과 학습으로 시위는 여전히 심각하고, 저항에 가까운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비교했을 때, 폭력이나 물리적 충돌이 거의 없었다. 촛불집회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분노한 시민들이 도덕적 타락과 불공정에 저항한 사건이다. 시위 후 시위 현장에 쓰레기를 정리하고 청결을 유지하며 국제 사회에서도 주목받기도 했다. 시위자로서 윤리적 우위를 증명하고 도덕성과 공정성을 중요한 한국의 사회적 가치를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2010년대 집회의 상징이 됐던 '촛불'은 진화되었다.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는 '아이돌 응원봉', '커스텀 LED 봉이 등장하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거나 인형 탈을 쓴 시민도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 여의도 거리는 다양한 불빛의 바다였다. MZ세대가 중심이 된 정치 시위의 새로운 트렌드를 시작이었다.

이들은 청소년 시절 세월호 사건을 보며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는 이태원 사태를 보았다.

그들에게 나라의 올바른 정치는 그들의 생존과 연관된다. 제대로 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는지 세월호 사태와 이태원 사태로 똑똑히 보았다.


다음 세대인 알파세대, 중학생 딸아이에게 시위 현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이고, 그것을 위해 함께 하는 이벤트 같은 것이다.

평화적 시위도 중요하지만, 마치 야외 공연장 같이 이벤트스러운 이 시위가 혁신인 이유는 주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지만 즐겁게 이 순간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고통은 추운 날씨일 뿐 서로의 즐거운 연대는 뜻하는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가 바뀌어 가며 폭력과 무력에서 평화의 시위로, 이제는 축제의 시위로 변화해 간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진화하고, 그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법을 어기는 자는 벌을 받아야 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실수를 하지 않는 현명한 세대들의 올바른 생각 속에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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