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 비건 손님을 맞는 우리의 자세

비건, 채식주의인 외국인 방문 시 무엇을 대접할까?

by 김지혜

제조업체인 A사는 중요 VIP 고객, 그레이스 상무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레이스 상무는 고객사에서 구매 결정권을 가진 아주 중요한 손님이다.

공장도 살펴보고, A사 대표와 미팅 후 점심식사를 함께 할 예정이다.

VIP의 방문에 회사 소개서부터 공장과 연구소, 회의실까지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그레이스 상무의 방문에 가장 큰 난제는 바로 점심 식사였다.

그레이스는 채식주의자(vegerarian)이다.

대부분의 공장과 제조업이 번화가에서 떨어져 있다. 인근에 식당은 있지만 채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을 찾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짧은 방문 일정에 멀리까지 갈 수도 없다.

이러한 채식 식당이 인근에 없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일단 인근 괜찮은 식당에 채식메뉴를 부탁해서 별도로 식단을 준비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A사는 인근의 한정식 식당에 특별히 채식 메뉴로 두부구이, 버섯볶음, 샐러드, 카레라이스를 별도로 준비시켰다.

우리와 다른 식단을 먹게 될 그레이스에게 채식을 따로 준비했음을 알리고 식사를 시작하였다.

카레를 한 숟가락 먹은 그레이스는 갑자기 카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카레에 고기가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당장 식당 주인을 불러 특별히 채식으로 고기 없이 준비를 요청했는데 그렇게 요리를 한 것인지 확인하였다.

식당 주인은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계속해서 카레를 뒤적거린다.

그리고는 닭고기 조각 하나를 찾아냈다.

주방에서는 사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냥 습관처럼 하던 데로 요리를 해버린 것이다.

작은 고기 조각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진한 카레맛에 있는 작은 닭고기 조각을 찾아 냈을까?

고기를 즐기는 나는 고기가 큼직 막 하지 않으면 고기 맛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그레이스는 평소 먹지 않던 낯선 고기의 맛 아주 조금일지라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어릴 적 밥 속 작은 당근 조각을 넣어 김에 싸서 먹이면 기똥차게 찾아 내 듯 내가 안 먹는 거나 싫어하는 건 쉽게 느낄 수 있나 보다.

결국 식당 주인은 카레를 다시 가져갔고 긴장된 분위기에 그녀는 다른 음식들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두부가 맛있다며 맛나게 먹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레이스와 함께 온 고객사 부장은 뭔가 썰렁해진 분위기를 띄워 보고자 그레이스에게 말을 걸었다.

“두부 정말 맛있어 보여요! 하나 먹어도 돼요?” 하며 젓가락으로 두부를 하나 집으려 했다.

그 순간 그레이스는 아주 빠르게 부장의 젓가락을 막고 본인이 두부를 덜어 주겠다고 했다.

본인이 먹는 음식에 육식을 먹던 젓가락이 닿으면 안 된다고 하며 그녀는 두부를 덜어 주었다.

결국 띄우려던 분위기는 하염없이 가라앉아버렸다.


그럼 한 끼가 아닌 며칠간 채식 식단을 준비해야 한다면 어떨까?


지방의 한 기관에서 콘퍼런스 행사를 진행하며 영국인 연사 제임스를 초청하였다.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콘퍼런스를 마친 후 지역 내 관련 기관 방문을 포함해 3일간의 일정이었다.

제임스는 채식주의자다.

제임스는 종교나 건강의 이유가 아니라 10살 때 TV에서 도축되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을 보고 채식을 결심하고 이후 쭉 채식주의자다.


나는 인천에 도착하는 제임스와 함께 KTX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역에 도착하자 이미 늦은 밤이었고 호텔로 가기 전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짐도 있었고 늦어서 인근 식당도 문을 닫았다.

결국 역내의 식당을 둘러보고 제안한 메뉴가 김밥이었다.

야채 김밥이라는 게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혹시나 햄이 들어가면 햄을 빼 달라고 하면 된다.

이쁘게 생긴 김밥을 보자 제임스는 맛나겠다면 호기심을 보였다.

그 순간 김밥 속 어묵을 발견했다.

약간이지만 어묵은 생선이 들어간다.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고 어묵을 빼고 먹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김밥 하나를 먹고 나서 제임스는 조그맣게 들어가 있는 맛살을 보고 이건 뭐냐고 물었다.

맛살은 게의 살을 흉내 낸 맛이다. 게살이 안들었을 수도 있고 어쩜 1%도 안 들어가 있지만 맛은 게살 맛이다.

결국 그것도 빼고 먹어야 했다.

결국 처음부터 알아차리지 못한 덕분에 구멍이 숭숭 난 김밥의 단무지와 당근 오이가 흘러내리며 제임스는 김밥을 먹어야 했다.

성격 좋은 제임스는 연신 농담을 하며, 열심히 젓가락으로 함께 집어 김밥이라 부르며 나의 미안함을 덜어주려 했다.

3일의 일정 동안 채식을 준비해야 하는 관계자는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과연 3일 내내 어떻게 한국에 처음 온 제임스를 위해 맛난 음식을 그것도 채식으로 제공할 수 있을까?

채식이 아니라면 너무나 대접할게 많이 떠오른다. 하지만 채식이라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유럽 여러 곳에 출장을 다니며 채식이 준비되지 않는 환경을 접한 제임스는 3일 동안 빵과 치즈만으로 지낸 적도 있어서 치즈만 있다면 문제없다고 했다.

다음날 콘퍼런스는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호텔에서는 채식 요리를 따로 주문하기가 쉽다.

그리고 저녁은 뷔페를 먹었다.

많은 메뉴 중 충분히 채식 매뉴를 골라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 우리는 안심했다.


다음날은 관련 기관을 방문하는 날이다.

한마디로 호텔이 아닌 외부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 점심과 저녁을 채식으로 구성된 식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점심은 한정식 집에서 여러 가지 반찬을 보고 놀라움에 이런저런 나물을 맛보는 제임스를 보며 우리는 안도했다.

하지만 저녁 식당은 여전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젊고 소탈해 보이는 제임스에게 서민 음식을 소개하면 어떨까 생각하며 찾은 곳이 전집이었다.

막걸리와 부침개는 설명할 것도 많고, 한국의 서민들의 음식과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소개하였다.

담당자는 고급 음식을 대접하지 못한 것에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 보였다.

우리는 김치전, 감자전, 부추전을 시켜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제임스뿐만 아니라 모두가 정말 맛있게 즐기고 웃으며 전을 먹었다.

3일간의 여정 중, 나도 그 전집에서 제임스랑 함께 먹은 전과 막걸리가 가장 생각난다.


우리에게 고급 음식은 주로 육식이거나 생선이다.

나물과 야채는 우리에게 그냥 반찬(side dishes)으로나 나오는 것이지 주요 요리(main dishes)같지 않다.

생각해보면 채식은 주로 그런 음식에 속한다.


전을 먹고 나서부터 우리가 생각하던 식단의 한계를 넘은 느낌이었다.

그때 부터 제임스에게 대접할 음식들이 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기를 뺀 비빔밥도 가능하고 잡채도 가능하다.

고구마나 옥수수 간식도 좋고, 야채죽을 수프처럼 먹어도 좋을 것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면 떡볶이나 비빔국수도 있다.

감자볶음과 콩나물 무침으로 사실 우리는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지 않는가?

아이들 어릴 땐 고기보다 김이 더 중요한 반찬이지 않았는가!


내가 이제 것 통역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가장 어려운 상황은 10년 전 비건을 만났을 때였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제품의 문제 해결을 위해 방문한 엔지니어 크리스였다.

아시아에 처음 방문한 크리스는 본인이 비건이라고 했다.

난 사실 그때까지 비건의 의미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비건(Vegan)
고기, 난류, 유제품 등 모든 동물성 식품 자체를 거부한다. 인간이 실제로 실천 가능한 채식주의의 한계라 해야 맞을 것이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이고 계란, 우유, 꿀처럼 동물에서 비롯된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나무 위키



오전 미팅을 마치고 비건이라고 들은 우리는 크리스를 위해 한정식 식당을 예약했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반찬이 많으면 몇 가지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음식이 나오자 크리스는 음식에 대해 궁금해하며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낯선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들을 설명과 더불어 야채라고 강조하며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흑임자 드레싱을 뿌린 샐러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먹을 수 없었다.

샐러드드레싱에 요플레 같은 유제품 성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된장찌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멸치 다시로 국물을 낸다.

김치는 어떨까?

젓갈이 들어간다.

우리가 채식이라 여겼던 그 많은 음식들에는 모두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 있었다.

꿀이 들어간 연근 조림, 된장으로 버무린 나물도 먹을 수 없었다.

이것저것 모두 확신할 수 없는 크리스는 결국 밥과, 생 야채를 쌈장에 찍어 먹으며 식사를 해야 했다.


크리스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데워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비건 음식을 챙겨 왔다.

결국 호텔 측에 음식을 데울 수 있도록 커피 포트와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이렇듯 해외에서 방문한 손님이 개인적인 이유 혹은 종교상의 이유 등으로 음식에 제한 사항이 있을 수 있다.

고객이 방문하여 함께 식사를 하거나 외국인과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면 이러한 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음식에 대한 취향을 확인하기 위해서 식단 제한( dietary restrictions) 사항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건이나 채식주의자도 있을 수 있지만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다.

친하다면 고객의 취향을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좋을 것이다.

Is there anything you don’t eat?

Is there anything you want to eat in particular?


처음 만나는 경우나 고객이라면 공식적으로 확인해도 좋을 것이다.


Are there any dietary preferences I should be aware of?

Pleas let me know if there are any dietary restrictions, so I can prepare accordingly.


선호하는 식단/제한하는 식단 :

dietary preferences

dietary restrictions

dietary requirements


15년 동안 프리랜서로 기업체 통역을 지원 하며 한국에 출장온 외국인 중 내가 만난 비건과 채식주의자는 이 세 경우 뿐이다.


한국에 출장을 오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음식에 제한이 없다.

출장을 많이 다녀야 하는 업무를 하는데 이러한 식단 제한은 본인에게 큰 어려움이 될 수 있다.

해외 담당 부서나, 출장이 잦은 업무를 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뭐든 잘 먹는다.

한국의 글로벌 업무 담당자가 해외에서 여전히 한국음식만을 고집하고 현지 음식을 못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출장이 많은 담당자라면 상당히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사실 채식을 하는 중요 고객이 두세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하염없이 나오는 한정식 메뉴는 열심히 먹기도 미안하고 안 먹기도 미안하다.

이렇게 채식을 하는 누군가 옆에서 고기를 맛나게 먹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같이 채식을 하는 것이 예의 일까?

한국보다 채식하는 사람들이 많고 채식음식을 찾기도 쉬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회식이나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상대를 배려하거나 나게 보는 경우가 있어 당당히 채식주의라고 밝히기라 불편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음식을 시켜서 함께 먹는 문화다. 그래서 상대의 음식 취향을 배려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같은 음식을 함께 먹거나 내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가 아니다.

오랜 시간 채식을 해오거나 그런 문화에서 살아온 서양 사람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각자의 취향대로 식사를 하는 것에 익숙하다.

각자가 즐기는 음식이 다르고 본인이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을 즐기기 않을 뿐이다.

그냥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각자가 먹는거다.

이러한 고객들은 그들 앞에서 맛있게 갈비를 뜯어도 기분 나빠한다거나 불편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채식을 하는 상대를 존중하듯 그들도 우리의 식성을 충분히 존중한다.


https://brunch.co.kr/@janekimjh/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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