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해도 해외업무가 어려웠던 이유
Dog & pig 이 개돼지가 아닌 이유
일반적인 통역, 즉 일상의 비즈니스 용어만 쓰는 간단한 회의 통역만 하면 통역사로서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프리랜서의 삶이 대부분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통역사라는 직업을 프리랜서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T자 구조로 일을 해야 한다.
일반 비즈니스 통역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지식을 보유한 나만의 전문 분야가 플러스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이 되는 통역사 간의 차별화는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과 용어의 이해에 달려있다.
이는 글로벌 업무에 똑같이 해당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 유학, 어학연수, 영어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 영어를 이해한다.
영어를 좀 한다는 사람도 업무를 맡게 되면 갑자기 '나의 영어실력은 어디로 간 거지~'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매번 다른 분야의 영어 통역을 해야 하는 프리랜서라면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는다.
그럼 새로운 업무와 비즈니스라는 소통의 장에 뛰어들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 분야를 처음 접하는 난 도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랫동안 다른 분야를 처음 접해야 하는 상황을 수없이 겪은 프리랜서인 나의 준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분야 통역 일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분야에 대한 학습이다. 그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말을 이해할 수 없다.
웹사이트를 찾아보고 고객이 제공한 자료를 찾아보고 읽고 학습한다. 그리고 내용을 통해 전문 용어를 수집한다. 학습하다 보면 반복된 중요 용어들이 존재한다. 용어를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한국어로 영어 단어들이 존재한다. 당연히 자주 나오는 단어는 중요 용어라는 말이다. 전체적인 학습이 끝나면 수집된 용어를 외운다. 마지막까지 외워지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은 커닝 페이퍼처럼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회의할 때 앞에 펴놓고 대비한다.
고객은 처음 보는 통역사가 중요 기술 분야나 세미나에 뛰어들어 소통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렇다고 돈 주고 고용한 통역이 실수해도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는 하지만 전문 통역사는 잘해 낼 것이라는 기대로 고용한다.
새로운 기술 분야나 한국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정말 어려운 분야라면 고객이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반복된 실수는 결국 고객의 따가운 저주의 눈빛으로 이어진다.
어려운 분야일수록 그 분야 통역을 해본 통역사를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어려운 분야일수록 해봤는가 안 해봤는가의 경력은 복리 이율처럼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그 처음의 기회를 잡기는 밑천 없이 장사하는 것 마냥 어렵다.
그 분야의 전문 용어를 빠르게 이해하고 그 분야의 용어로 통역을 해줄 때 통역은 ‘잘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엔지니어링과 기술 전문 통역이다. 하지만 프리랜서인 나에게도 새로운 분야의 통역 의뢰가 있다. 이런 경우 더 많은 시간을 사전 학습에 할애해야 한다.
반려견 비즈니스의 통역을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 반려견 Grooming(그루밍) 사업 분야였다.
즉 쉽게 말하면 개의 털을 예쁘게 깎는 일을 하는 사업이다.
우리가 아는 개는 영어로 Dog이다.
반려견 분야 통역을 하면서 개를 개라고 부르면 이해는 되지만 전문성이 떨어지고 이상하게 들린다. 한국에서 '개'라는 표현은 여전히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정적 단어이다.
영어로는 똑같은 dog이라고 하더라도 그쪽 분야에서는 ‘개’라고 하지 않고 ‘견’이라고 해야 한다.
Breed는 '개 종류'가 아니라 '견종'이다.
Dog’s hair/ fur 가 나와도 한국 정서 상 ‘개털’이라고 할 수 없다.
털이라는 용어를 꼭 써야 할 수밖에 없다면 ‘강아지 털’로 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개털이라고 할 수 없다.
성인견이라도 그냥 강아지라고 해야 이상하지 않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서는 대형 견을 키우는 경우가 많지 않아 성인견을 강아지라도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Dog grooming business는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할까?
개는 ‘견’으로 거기에다가 ‘애’를 붙여 ‘애견’이라고 해야 한다.
즉 ‘애견 미용 사업’이다.
한 개의 영어 단어지만 한국어로 각 분야마다 그에 맞는 표현이 다르다.
이런 경우, 한국어 학습할 내용이 영어보다 더 많다.
개뿐만이 아니다. 돼지도 돼지라 부를 수 없다.
돼지 번식 세미나를 통역한 적 있다.
그 세미나에서 스페인 전문가는 돼지를 통틀어 pig과 swine(돼지의 전문 용어)의 용어를 사용했다.
전문가들만 참여한 그 세미나에서는 swine farm을 '돼지 농장'이 아니라 ‘양돈 농장/양돈가’라 부른다.
돼지 번식 세미나를 준비하며 열심히 사전을 찾아 돼지 용어를 공부했다.
hog 수퇘지, boar (거세 안 한) 수퇘지, sow 암퇘지, breeding pig 씨돼지
하지만 그 세미나에 참석자는 아무도 수퇘지 암퇘지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양돈 산업에서는
boar 웅돈,
sow 모돈,
a breeding pig 번식돈
Parent Stock 종돈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가장 슬프게 들렸던 단어 fattening pig (비육돈)
사람들이 먹기 위해 살찌우는 돼지를 양돈 산업에서는 이렇게 불렀다.
결국 사전을 열심히 찾아보고 한국어를 암기해갔지만 세미나 중에 용어를 고쳐가며 따라잡기에 벅찬감이 있었다. 그 분야의 자료를 충분히 학습하지 않은 결과다.
이렇듯 각 분야마다 일상에서는 접하지 않는 그 분야만의 전문 용어가 있다. 전문용어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한국어가 더 어렵다.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외부의 사람들도 이러한 용어를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지식의 저주이다.
이미 내가 알고 익숙해진 지식을 모르는 사람이 어떠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결국 내가 그 분야에 새로이 뛰어든다면 그들의 대화를 중단해가면 용어를 묻을 용기를 내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위해 분야의 전문 용어를 최대한 학습하고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영어가 유창하면 해외 비즈니스는 당연 잘할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실 유창한 원어민도 새로운 분야에 일을 맡게 되면 결국 관련 용어를 공부해야 한다.
해외 업무를 잘한다는 것은 내 업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파악하며 그 파악된 것을 영어로 잘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왜 중요한가 좋은가를 설득할 수 있는 역량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