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행간 없이 규태처럼 살 수 있을까?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에서 옹산의 최고 엘리트인 변호사 홍자영은 규태에게 청혼한다.
"누나 동기 새끼들은 다 판검산데 굳이 왜 나랑 결혼을 해?" 규태의 물음에 홍자영은 대답한다.
"난 너랑 있으면 편해. 넌 사람이 행간이 없잖아"
동백꽃 필 무렵을 본 사람이라면 규태의 행간 없는 스타일을 이해할 것이다.
행간이 없는 사람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철이 없다’이다.
반대로 우리는 행간을 빠르게 읽어 내는 사람을 눈치 있고 어른스럽다고 여긴다.
한국은 이렇게 행간을 읽어야 인정받는 고맥락 문화의 사회이다.
고맥락 문화의 일부 표현들은 저 맥락의 표현 위주인 영어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잘 부탁합니다.(잘 부탁드립니다)”
고맥락 문화의 대표적인 일본의 경우는 정확한 일본어 표현을 가진다.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ねがいします
[도조-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하지만 이 말의 직접적인 영어 표현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중에 누군가가 “잘 부탁합니다”라고 한다면 이미 상대가 어떤 의미에서 말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한다.
예를 들어 해석한다면
“ 내 맘 알지, 그러니 잘 도와줘", 혹은 '너는 힘이 있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너를 믿고 있을게'라는 무언의 압력을 의미인 경우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어느 중견 기업의 CEO는 미국에 있는 파트너 회사에 경영 수업을 위해 아들을 파견 보낸다. 업무적인 다리 역할 (coordination)뿐만 아니라 미국의 업무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 온 파트너 사의 부사장에게 “(아들을) 잘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이 경우의 잘 부탁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잘 부탁드립니다.’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을 해보았다. I will leave it up to you
이 말은 마치 너에게 믿고 맡기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런 의미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 혼자 갈 아들이 걱정되니 안전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 달라.
(Please take care of him./ Please look after him.)
업무적인 것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잘 가르쳐 주기 바란다.
(Please help him to learn a lot.)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에는 이 모든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
상황에 맞추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적절한 표현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를 보자.
업체 간의 회의를 마치고 업무 협력을 위해 파트너 쉽을 맺기로 했다.
마무리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면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상대의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좀 많이 도와 달라는 뜻일 수 있다.
Hope I can have your good support.
혹은 협력의 기대감을 표현했을 수도 있다.
I’m looking forward to working with you (앞으로 함께 협력하는 것에 기대가 큽니다. )
'잘 부탁합니다' 하나도 이렇게 많은 경우의 의미를 가진다.
이와 유사한 행간의 많은 뜻을 내포하는 표현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수고했습니다.
통역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여전히 영어로 표현하기 힘든 한국말이다.
통역을 시작한 첫해 어느 대기업에서 해외 현지 직원들의 교육 통역을 맡았다.
매일같이 한국인 담당 부장님은 교육생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말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 교육을 열심히 참여하는 교육생들에게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잘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Job well done/ Good job/you did a great job."
교육생들에게 상사가 될 부장님이 던지는 "수고했습니다"로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후,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진행하는 과제가 어려워 제대로 마무리를 못한 채 그날의 교육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부장님은 그들의 노력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이 경우 "Job well done/ Good job/you did a great job."라고 할 수는 없다.
하루의 과제가 기대만큼 잘되지 만은 않은 건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고하셨습니다/수고했다'라는 말의 의미는 '잘했거나 못했거나 어찌 되었건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생이 많으셨습니다'라는 의미에 가깝다.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을 더 중시하는 말이다.
그렇게 과정의 노고에 대한 '수고하셨습니다'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You are doing great. 잘하고 있습니다.
I know you are trying hard.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You must have worked really hard for this. Thanks for your efforts/hard work.
정말 많이 애쓰셨네요. 노고에 고맙습니다.
우리는 헤어질 때에도 가끔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계속 고생해라'라기보다 "하던 일이 계속 잘되길 바랍니다"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상사가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주기 바란다/힘들지만 포기하지 말고 쭉~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라는 의미라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Keep up the good work. 지금처럼 앞으로도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헤어질 때 그냥 큰 의미 없이 '수고하세요'라고 하기도 한다. (Thanks/bye/See you later/take care)
한국의 고맥락 문화는 말의 행간에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누군가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빛, 행동, 앞뒤 상황을 살펴서 행동하고 답해야 하는 문화라는 말이다.
우리는 행간 없던 아이에서 '눈치 없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상대의 행간을 읽으려 애쓰며 자라왔다.
행간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지금도 눈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노력과 에너지는 우리를 관계 맺기에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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