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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Sep 07. 2022

어른과 와인

어릴 때, '마음은 이팔청춘'이라며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분들이 말씀하시면 '설마 그럴까?'의심했다. 몸과 마음의 노화가 다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20, 30대를 지나 꺾어진 구십이 되니, 이제는 알겠다. 내 마음은 여전히 20대 초중반인데 외관으로는 그 두 배나 된다. 거울 앞에서 탄력을 잃은 볼살과 목의 주름, 피부의 잡티들을 보면서 내 마음같지 않은 외관을 정말 부정하고 싶다. 



그런 한 편 이런 질문도 해 본다. 혹시, 내가 겉으로 보이는 나이 만큼 '성숙한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우기고 싶은 '마음의 나이 20대'의 언행으로 미숙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른일까? 어른을 흉내내는 성인 사람일까? 참, 그런데 어른이 뭐지? 호기심에 네이버 국어 사전을 찾아봤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우선 '다 자란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신체적으로는 분명 다 자란 때를 넘어 노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정신이나 감정은 아직이다. 성장인지, 퇴보인지, 변화인지, 변질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음으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의 관점에서도...아...아직 자신이 없다. 나 한 몸 겨우 책임진다. 나를 넘어 확장된 관계, 예를 들면 가족 관계에서의 딸, 엄마, 아내, 며느리, 동서, 고모, 누나 등 다양한 역할에서도 내 몫을 하는가에 대해 자신이 없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아직 어린이.



「파지트 두 글자003. 어른 그리고 와인(강남역)」

단톡방에 흥미로운 제목의 모임 공지가 떴다. 딱 한 자리 남았으니 신청하라는 메시지였다. 요즘 '홀로서기'에 관심을 많이 쏟고 있어 사회적 관계 확장이 절실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저요, 저요!' 손을 들었다. 여섯 명 정원 중 다섯 분이 어떤 분들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낄 수 있는 나이대의 분들이겠거니. 그들이 어떤 모습의 어른으로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었다. 



여섯 명의 어른들이 모였다. 퇴근 시간이 달라 시차를 두고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모두가 모일 때까지 낯설고 서먹하게, 마치 콩가루같이 각자 흩어진 느낌이었다. 여섯 명이 다 모이고 나서 어색하게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삶을 들으며, 특히 90년대 학번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뭔가 모이는 느낌. 초면인데도 스스럼 없이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신나게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은 자리였다. 심리적 안전감이 그런 것이 아닐까? 판단받지 않을 자리라는 것에 대한 확신. 그런 확신과 신뢰감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궁금했다. 골똘히 생각해 보니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글 쓰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와인도 좋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좋았다. 정작 주제로 삼았던 '어른'에 대해 깊은 담소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이 날은 우선 자기 소개한 것으로 만족.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 때는 꼭 '어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 어린이로 남지 않고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잘 성장하고 싶고, 내 주어진 역할과 상황에서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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