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롤모델은 과거의 나.

by 무소의뿔

"그 모습을 위해 따르고 싶은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저의 롤모델은...과거의 저예요!"


얼마 전의 대화에서 받은 질문에 내가 답했다. 상대가 살짝 놀라는 것을 느꼈다. 나도 내 생각에 놀랐다. 과거의 나로 부터 내가 찾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성실함이다. 끈기와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성실하게 살았는지 모른다. 습관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립나 보다. 의식의 단계를 넘은 습관적 행위에는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의지가 꺾일 염려가 없다. 슬럼프가 없다. 그 행동에 대해 감정이 없다. 그냥 하는 거다.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데, 정직한 시간을, 일정량, 정기적, 규칙적으로 꾸준히 그 행동에 담는다.


내가 닮고 싶은 고등학생 때의 나. 아버지가 출근하실 시간에 나도 등교를 했다. 늘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해 교무실이며 복도의 불을 켜고 다녔다. 아무도 없는 시간이라 무섭기도 했지만, 밤 사이의 적막을 깨우는 짜릿함이 컸다. 매일 일찍 등교해 아침의 EBS 방송학습이 있기 전까지 국어 공부를 했다. 국어, 문법, 문학을 번갈아 가며 매일 1시간 정도 꼼꼼하게 공부했다. 어떤 이유인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냥 그렇게 매일같이 국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2교시나 3교시 후 쉬는 시간에 해치우고 늘 학교 건물 꼭대기 층의 독서실에 자리를 잡았다. 시끌시끌한 학교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고, 또 조명을 켜지 않아 어두워 집중하기 딱 좋은 장소. 거기에서 영어 단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10대 때에는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질문이 없었다. 왜? 무엇을? 얼마나? 언제까지? 그런데 성인이 된 어느 시기 때부터는 질문이 많아졌다. 필요해? 해야해? 얼마나? 꼭 그렇게까지? 확신해? 효율적이야?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성실함이 닻을 내리고 일할 기회를 놓친다. 과거의 나에게서 회복하고 싶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보다. 꽂히면 앞뒤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하는 것. 누적된 시간이 힘을 발휘하고, 습관이 나를 쌓고, 삶을 만들어 가도록, 과거의 나를 모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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