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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Aug 09. 2020

홀로 보내는 시간들

나를 나답게 하는 것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가끔씩 몸이 아플 때 꺼내먹는
비상약과도 같은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 시간으로부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온전히 모든 감각기관을 작동시킬 수 있으며,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문득 떠올리기도 한다.
생각하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발전시킬 수 없다.
누구와도 융화되지 않는 삶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 속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디스크 정리를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결혼 10년 차, 나는 어느새 아이가 셋이다.
5세, 7세, 9세. 그야말로 정신없는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나 요즘같이 코로나가 온 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시기에,
아이들과의 밀접한 시간이 많아진 까닭으로 나는, 아니 나를 비롯한 세상 모든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기란 더더욱 어려워졌다.

눈을 뜨면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얼마 전까지는 큰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도와줘야 했고, 청소는 물론 빨래에 간식 준비에 끼니 준비까지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었는지,

기온이 29도쯤 되는 날씨에는 어떤 옷을 즐겨 입었었는지, 취미생활로 어떤 일을 하는 걸 좋아했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저 평범한 애엄마, 아줌마,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았다.

물론 아이들은 보석처럼 예쁘고 지금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신랑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서너 번 나에게 자유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살림과 육아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 온전한 대여섯 시간을 가진 나는 처음에는 혼자서 뭘 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내 마음만큼은 묘한 설렘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차에서는 핑크퐁 대신에 예전에 즐겨 들었던 팝송들을 크게 틀어놓고, 딱히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저 신호 대기 중에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아이가 생기기 전에 즐겨했던 취미생활들이 삐걱대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아주 빛바랜, 낡았지만 기분 좋아지는 옛날 앨범 속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들춰내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에 그저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라테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거나, 양손에 팝콘 하나와 콜라를 들고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영화 한 편을 보거나,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느라 거칠대로 거칠어진 손에 반짝이는 네일아트를 하거나,

비싸진 않아도 요즘 유행하는 퍼프소매의 티셔츠 하나를 사거나 하는 아주 보통의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그런 사소한 시간들로부터 조금씩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들이 드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점차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웃음도 늘어났고 표정도 밝아졌다.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게 된다.
누군가는 승진을 위해 타인의 긍정적 평가를 받으려 노력할 테고, 또 누군가는 타인의 비판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유명 정치인의 죽음도, 유명 연예인의 자살도, 어쩌면 나 자신의 온전한 삶보다는 타인의 시선과 비평에 좌지우지되는 그런 상황에서 비롯된 결과물이 아닐까.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사는 삶은 나를 포장지 속에 꼭꼭 숨겨 놓는 것과도 같다. 10개의 장점 중에 단 한 개의 단점을 숨기기 위하여 내 전체를 포장하는 삶. 대부분의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물며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인 나조차도 아이들 앞에서는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화가 나도 그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 할 때가 많다. 속으로는 골병이 들어도 말이다.

진정한 내 모습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이 '혼자만의 시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는 시간 속에서, 1분 1초가 내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진정한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서툰 젓가락질도, 구멍 난 양말도, 늘어진 티셔츠도, 잠시 미뤄둔 업무들도, 나 혼자라면 그저 다 괜찮다.
오히려 그런 편안하고 나른한 시간 속에서 복잡했던 생각은 차차 정리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혼자만의 시간 끝에서 다시 타인들과의 관계 속으로 뛰어들 때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지치거나 어떤 일로 참을 수 없이 괴로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얼핏 돈도 안되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내 마음속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주는 것,

나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시간.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이라는 걸.

이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알면서도 잘 못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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