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많은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았다. 특히나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불과 얼마 전 전해 들었던 이웃의 이야기가 내 가족의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이웃의 시어머니는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증상이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이송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쉽지 않은 상황을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오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엄청난 상실감으로 우울해하다가 결국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함께 해야 마땅한 인간의 '임종'의 순간에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피할 길이 없었고, 이제 죽음은 더 이상 준비된 절차가 아닌 '통보'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우리 가족 앞에도 다가왔다.
올해 97세인 나의 친할머니 이야기다.
6.25 전쟁부터 전기차 시대인 지금까지 격동적인 한국의 세월을 모두 살고 계신 역사책과도 같은 분. 그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저마다의 운명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97세가 되도록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이제는 가까워진 삶의 끝자락에서 편한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할머니에게 가혹한 형벌이 떨어진 것이다.
하필 그날따라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새벽에 자다 깨서 화장실을 가시다가 넘어지셨단다. 이미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던 터라 다리뼈 두 개가 골절되었는데도 그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몸 상태였던지라 할머니는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아들을 부르지 않았다. 원래 웬만한 일들을 혼자서 해결하려는 성격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응급처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상태로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과정에서 조각난 뼈가 다리 속 혈관이며 신경이며 인대 등을 다 엉켜놓은 것이다.
응급실에 가게 된 시간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난 후였기에, 이미 괴사는 진행되었고 다리를 절단하거나 죽음을 전제로 하는 수술을 감행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차 수술이 끝나고 깨어난 할머니의 첫마디는 '집에 가겠다'였다. 귀도 안 들리시고 한글도 못 읽는 할머니에게 도무지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된 할머니는 자식들이 자신을 버린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의료진은 팔에 꽂힌 주사며 검사 장치며 모두 다 빼버리고 발버둥 치는 할머니를 할 수 없이 침대에 묶어 버렸다.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그 소식을 들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한평생 할머니를 곁에서 보살피던 큰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한 상태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금지되었고, 지정된 보호자 1인에게만 하루 딱 30분 면회가 허락되었다. 그마저도 3일마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 결과지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가족의 생이별.
내가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만난 것은 팬데믹이 터지기 전인 2년 전 추석이었다.
나의 8살, 6살, 4살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주름졌지만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셨다.
6.25 전쟁의 피난길에서 아이를 낳고 하혈한 흔적을 씻기 위해 강가에 갔다가 기절해 물에 떠내려가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한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살아낸 할머니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고생 축에도 못 낄 테지만, 세 아이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고, 촉촉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3일 뒤 3차 수술을 앞두고 있다.
전신마취를 하고 부러진 뼈를 맞추는 그 수술을 할머니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퇴원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내 맘대로 얼굴도 볼 수 없는 상황.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을 잃었다.
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아들이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소소한 물건들과 음식을 사는 것이었을 텐데.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어찌나 극진히 모셨는지, 마지막으로 심장 스텐트를 교체하며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후로도 15년을 사셨으니 말이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거룩한 임종의 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죽음의 시간 앞에서 한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마지막 권리를 박탈당했다.
우리는 이대로 얼굴도 못 본 채 언제 죽음을 통보받을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나갔다.
팬데믹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언제 또 새로운 형태의 팬데믹이 생길지 모른다.
기술의 발전과 편리한 삶의 추구 대신, 한 번쯤은 본연으로 돌아가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