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위한 고통
겨울 가뭄 끝에 봄비가 내린다. 타인과의 조우가 줄어든 자리에 느긋한 일상이 고이자, 비로소 날씨의 미세한 결이 감각을 깨운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이 비는 축축함보다 경쾌한 리듬으로 다가와 봄의 시작을 알린다.
지난겨울, 추위를 핑계로 실내에 머물며 웅크렸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이번 봄꽃 구경은 조금 화려하게 꾸려볼 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공적인 화려함보다 푸른 생명력에 마음이 기우는 탓이다.
최근 이사를 하며 고층 대신 저층을 택했다. 자산 가치나 매매의 어려움을 이유로 주변의 우려가 컸지만, 나는 숫자보다 창가에 가득 담길 나무의 정취를 믿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
창가까이에 붙은 나무가 새순을 틔우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즐거운 상상보다 나뭇가지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작은 새들의 방문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사계절을 오롯이 통과하는 나무가 계절마다 어떤 옷으로 갈아입을지 지켜보는 것, 그것이 이번 봄이 유독 기다려지는 이유다.
저녁이 되자 비는 거센 바람을 동반한다. 잔가지를 쳐내며 스스로를 가다듬으라는 자연의 훈육임을 나무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거센 바람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보니 작은일에 출렁이는 내마음이 고요해진다.
나도 저 나무처럼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조금씩 성장중일까?
머지않아 햇살이 비추면 거실 가득 차오를 연초록의 풍경을 가만히 그려본다.
26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