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9
9화 오빠, 일 그만뒀어?
"처음이라서 망설여진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내포한다. 우리네 인생은 다시 살 수가 없어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처음'경험한다.
첫 태몽, 첫 뒤집기, 첫걸음마, 첫 발화, 첫 대소변 가리기. 대부분의 본인의 인생에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주로 부모님이 기억하는 처음은 매우 본능적이고 본인은 기억이 잘 안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의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엄마의 자궁안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으로 결론 지었다던가. (탄생마저 할지 안할지 선택한다는 결말, 결말이 두개였는데, 그 결말은 개봉 안했던 걸로 알고있다.)
첫 진학, 첫 단짝 친구, 첫 연애, 첫 키스, 첫 대학 입학..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에 스스로의 의지가 조금씩 개입되고 어느 순간 온전히 본인의 의지로 인생의 운전대를 잡게 될 때 우리는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느낀다. 어릴 적 우리의 인생은 부모님이 뒤에서 잡아주던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 같았다면, 이젠 그녀가 그 보조 바퀴 떼고 온전히 그녀 혼자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거창하냐고? 그만큼 인생의 커다란 선택이라 생각하니까. 결혼은 인생 중대사 이지만, 누구나 처음이라 경험치란 게 없고(재혼 제외), 할지 안 할지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남과 인생을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보다 나만큼 상대가 그 과정과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며, 그 선택이 성공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생각보다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B가 확신할수록, 가깝게 다가올수록 그녀는 이제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같이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겠냐"라는 질문에서 그녀의 머릿속에서 쉽사리 "오케이"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 더 답답했는데 소화불량에 걸리면 꼭 찾아오는 그녀의 편두통이 머리 옆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이 괴롭혔다. 흔히 말하는 그가 부유한 집안이 아니어서, 스펙이 평범해서가 아니었다. 친구에게서 '벤츠 뒷자리에서 울거냐 시장바구니들고 울거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는 건 매한가지 아니야?장소가 어디든 울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최고지' 라고 생각했더랜다.뭔가 좀 더 본질적인 것이었는데 재이는 그게 뭔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B는 발목이 더 안 좋아져 결국 휴직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이 참에 그가 건강을 회복해서 더 좋아질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랬다. 그런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휴직이 두 달쯤 되었던 어느 날, 아무리 봐도 발목은 이제 좋아진 것 같은데 B는 다시 회사로 돌아갈 맘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둘이 쌈밥을 먹고 있었던 중이었던가. 한 쌈을 먹음직스럽게 베어 문 그를 보다가 문득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오빠, 혹시 일 그만뒀어?"라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말에 B는 흠칫 놀라더니 먹던 쌈밥을 꿀꺽하고 넘기고는 "응.. 이번 주에, 며칠 안됐어. 말하려고 했는데..."라고 했다. 어떻게 알았냐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렇지만 놀라고 화나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불길한 느낌에 한번 운을 떼듯 물어본 것인데, 그가 정말 일을 그만둔 것이다. 그녀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녀의 머릿속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재이는 너무 충격적이고 화가 나서 뭐라고 할 말을 찾지를 못하고 있었다. 일을 그만둔 것보다 그녀에게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그런 중대사를 결정했다는 것에 더 충격을 받았다. 아니, 결혼을 하자고 할 만큼 중요한 사람에게 이런 걸 말을 안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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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합니다.
*장르를 굳이 따지면, 연애성장물(?) 정도 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