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10
10화 관계가 의무가 되는 순간
재이가 입을 꾸욱 다문다. 화가 많이 나면 무의식적으로 하는 그녀의 행동이다. 불같이 화를 내기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더 무섭다는 그녀의 무표정. 그런 그녀의 앞에서 그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먼저 말 못 해서 미안. 근데 아직 엄마한테도 말 못 했어.. 사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이젠 너무 무거워 눈물이 고이는 것만 같다.'그만두고 나서야 말하려 하니 더 할 말이 없지. 왜 의논할 생각 한번 안 했어?'라는 말이 그녀의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그녀는 말해 무엇하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그만뒀다는데, 엄마한테도 못 말했다고 저렇게 축 쳐져있는데. 근데 대체 그녀가 안 물어봤으면 B는 본인의 퇴사을 언제 말하려고 한 걸까? 왜 얘기를 퇴사 전에 먼저 안 한 걸까? 그녀가 무조건 반대만 하리라고 생각했나? 별별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맴돈다.
"오빠 이제 30대 막 시작이고 우리 아직 젊잖아, 뭐 그만둘만하니까 그랬겠지. 천천히 또 다른 곳 잘 찾아보면 되지 뭐.."
머리 따로, 가슴 따로인 듯한 그녀의 차갑게 가라앉은 기계적인 말투와 달리, 화내지 않아 다행이다 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안색이 조금 밝아진다. 그녀도 더 묻지 않았고 그도 더 말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맴돌아서 밥집에서 그가 밥을 남기고 나온 건 그게 처음이었다.
그녀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았지만 무언가 그에 대한 큰 신뢰의 덩어리가 깨진 느낌이었다. 그녀의 존재감이 그에겐 그것밖에 안되었던 것이라는 실망감이 확 들어차고 말았다. 그렇게 존재감으로까지 비약하지 않더라도 만약 결혼했는데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나오면 그녀는 또 어찌 반응해야 했을까 더 막막해졌다.
그렇다고 막 퇴사를 하고 힘들어하는 그와 헤어지는 것은 마치 그가 가장 약해졌을 때 의지가 되지는 못할망정, 배신을 때리고 마치 그녀가 도망가는 것만 같아서, 그동안의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그가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 본인의 직업을 찾을 때까지는 최소한 곁에 있어야겠다 다짐하는 그녀였다. 초반의 불같았던 스파크가 타버린 그 지점에 그 지나가버린 열정에 대한 책임을 지듯, 어느새 의리와 의무감이 그 관계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B의 몸은 점점 건강해지고 늠름해졌지만 그는 어딘가 취직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꾸 물어보고 보채는 것도 이상해 보일까 봐 최대한 말을 아낀 그녀였지만 마음이 껄끄러운 것을 어쩌지는 못했다. 더 이상 그의 잘생긴 얼굴이, 더 늠름해진 몸매가 멋져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결국 참지 못하고 B에게 취직 준비를 하고 있냐고 물어본 재이에게 그는
"결혼하자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왜 이제 와서 마누라처럼 굴어?"
라고 이전에 미적지근했던 그녀의 반응에 복수하듯 그녀의 맘에 생채기를 내었고 그러면 그녀는 질세라
"오빠가 자꾸 이러면 내가 어떻게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그러겠어?"
라고 상처를 그대로 되돌려줬다.
재이는 연애의 방향을 점점 갈피를 잡을 수없었다. 오래된 관계를 쉽게 서로 놓지도 잡지도 못하고, 먼저 누가 선을 넘기를 바라는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주변을 빙빙 돌며 티격태격하던 어느 날,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B는 재이에게 동해바다를 보러 기분 전환 겸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마도 그들의 관계에 여행이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것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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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늦어져 죄송해요. 꾸벅...변명이고 핑계지만 13시간 넘게 일을 하느라..ㅠㅠ(이럴 때 세이브 원고가 절실합니다. 게을렀던 지난날 저를 반성하며..)
*막판까지 글을 쓰라고 채찍질해준ㅋㅋㅋ 1호팬 남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