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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06. 2021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2

2화. 그 사람의 입냄새

그 남자는 커피와 차를 하루 종일 달고 다녔다. 텀블러도 갖고 다니면서.


재이는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아~커피를 좋아하시는구나. 저도 그래요~. 아, 차(Tea)도 좋아하시는구나~ 전 잘 모르지만  A오빠가 많이 알려주세요 :)"


그 당시 재이의 취향은 "나에게 잘하는 남자"였다. 나쁜 남자? 그런 건 재이의 사전엔 없었다. 나쁜 남자는 곧 내게 관심 없는 남자를 뜻했고, 나쁜 남자는 곧 그만큼 본인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남자라고 여겼고 멀리했다.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잘해주는 남자, 그것보다 쉬운 출발점은 없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본인이 좋아서 쫓아다니다가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흥미가 확 떨어진다고. 그건, 사냥 본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재이는 딱 그 정반대였다. 관심이 없다가도 상대가 내게 관심이 있다고 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이 달리 보였다. 모든 사람은 장점과 배울 점이 있다. 꽃은 그 사람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부터 의미 있어진다.


A는 공부를 잘했다. 사람도 착하고 배려심도 좋았다. 그리고 착한 초식동물처럼 재이의 투정도 잘 받아주고 그녀가 최고라며 그녀를 사귀게 된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라며 그녀의 동문들 사이에서 자랑을 하여 야유를 사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재이가 토익공부를 한다고 하면 어디선가 최근 토익 족보를 구해왔고 비가 오는 날엔 학교 도서관 앞에 우산을 들고 기다렸다. 딱히 외모가 부족하지도 않았고 피부는 희고 약간 통통한 편이었지만, 재이 그녀 본인도 통통하니 둘이 나란히 서있으면 그녀 혼자 덩치 있어 보이지 않아서 그녀는 좋다고 생각했더란다.


A는 좋은 남자였다. 다만 위가 안 좋았던 것 같다. 위염이었는지 식도염이었는지를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본인도 그게 거슬렸었는지 연신 커피나 좋은 향이 나는 차를 마셨지만 그 냄새는 쉽사리 잘 가시지 않았다.


재이는 그 입냄새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실례가 아닌가. 몸이 아파서 그런 것인 듯한데 말이다. 그렇지만 입냄새가 나는 그 남자와의 키스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게 문제였다. 영화관에서 불이 꺼진 틈을 타 부끄럽다는 듯 키스를 시도하는 그를 화들짝 놀라 남들이 보지 않냐며 밀어냈을 때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숨결. 그건 마치 방귀를 소리는 가릴 수 있어도 냄새는 가릴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 라는 노래가사가 있던가. 미안한데 그 와의 키스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미안하지만 입을 다물어주겠니? 뽀뽀까진 내가 어떻게 참아볼게라고 말할순 없지 않은가.


재이는 죄책감이 들었다. 본인을 책망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인데, 그게 뭐라고, 자기가 뭐라고 상대를 겨우 그거가지고. 좀 아파서 그럴 수도 있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그렇지만 사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분명 그 냄새를 의식해서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커피와 차도 그 냄새의 원인에 한몫을 하는 것 같은데. 처음엔 고상한 취미로 보였던 커피와 차는 위장과 식도를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A가 반경 가까이 몸을 밀착해 앉거나 맞은편에서 식사를 힐땐 왠지 항상 좋은 그녀의 식욕마저 떨어지는 듯했다.


몇 번의 잦은 싸움, 아니, 재이의 일방적인 성질을 그는 이유도 모른 채 몇 번을 당했지만, 그럴수록 A는 오기를 부리듯 그녀에게 더 잘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럴수록 더 야멸차지는, 한마디로 나쁜 여자가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A는 재이에게 너무 잘했지만, 재이를 점점 나쁜 여자로 만들었다. 나를 너무 착하게 하는 그대가 아니라, 나를 너무 나쁘게 만드는 너무 착한 그대가 되어버린 A에게 재이는 어느 날 이별을 고했다. A는 어이가 없고 영문을 몰랐다. 미안했지만 더 이상 서로를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과 함께 그녀는 결국 A에게 나쁜 여자로 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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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 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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