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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10. 2021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3

3화. 나쁜 여자

"너는 왜 이동할 때만 나한테 전화를 해? 남는 자투리 시간 아니면 전화를 할 시간이 없어? 카톡은 또 왜 이렇게 늦게 답을 하고. 내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밥을 먹기는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날 좋아하긴 하니?"


재이의 또 다른 어떤 남자 친구가 남긴 말이다. 섬세한 배려심과 수줍음이 많았던 그가 폭발하며 재이에게 토하듯 말을 내뱉었다. 둘은 스터디그룹에서 만났고 미래에 열정적이었고 서로의 앞길을 응원하는 좋은 커플이었다. 재이도 이만하면 참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착실한 남자 친구가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화내는 그를 보며 불현듯 재이는 깨달았다. 그가 말하는 건 다 팩트였다.


 왜 그녀는 그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은가? 아니, 그는 왜 그녀가 뭐 먹었는지가 항상 궁금할까? 먹고 나서 뒤돌아서면 까먹는 끼니인데, 그가 뭐 먹었는지 뭐 먹을 건지 그녀가 궁금해야 하는 건가? 그게 좋아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왜 그런 사소한 것들이 궁금한 걸까?

 

머리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괜스레 그에게 미안해진 그녀는 그 이후 애써 그의 사소한 일상을 물어보곤 했지만, 듣고 나면 까먹기 일쑤였다. 그리고 급기야 화가 났다. 자투리 시간 쪼개서 전화하는 게 뭐 어때서. 대체 본인이 뭘 잘못한 거냐며. 그녀는 약간 피곤해졌다. 그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연락이 오지 않았고 그녀는 그런 그를 건드리는 게 피곤해 관계를 방치했다. 재이는 그가 그녀의 연락이 먼저 와서 미안하단 소리를 하길 바란다는 걸 알았지만, 뭔가 억울했고 그렇게 미루다 나중엔 전화하기가 무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새벽녘 얕은 잠을 자다 길 건너 맞은편 둑길에 그가 다른 여자와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의 바뀐 카톡 프로필이 미묘함을 감지했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그러고 나서 묘한 안도감이 들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화들짝 놀랐다. 그가 그렇게 조용히 다른 짝을 찾은 것에 대해 그녀는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을 뿐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정도 밖엔 안된거야. 차라리 잘 되었어라고 생각했다.


그밖에도 재이의 헤어짐의 이유는 다양했다.

쩝쩝대며 먹는 식사습관이 있었던 남자(그는 미식가였고 맛집을 잘 알았고 음식에 대한 현란한 입담을 가졌다)

3층 계단 올랐을 뿐인데 헉헉대는 저질체력을 가졌던 남자(그는 만능 척척박사 같은 맥가이버에 백과사전 같은 상식을 가진 남자였다)

 결벽증에 가까운 깔끔함을 가졌던 남자(그는 깔끔한 인상과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패션을 선보였지만 어머니가 철마다 집안 가구 재배치를 하고 아버지는 샤워를 두 시간씩 하고, 본인은 손을 너무 자주 씻어 손에 건조함이 생겼었다),

말끝마다 오빠가, 남자가, 여자가 어쩌고 하는 말버릇을 가졌던 남자(그는 모델같이 키가 컸고 정장이 아주 잘 받는 외모에 남자다운 카리스마로 재이를 사로잡았었다)

오래 사귀었던 옛 여자 친구의 흔적들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남자(재이는 그의 완벽한 매너에 반했는데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 그는 매번 느끼게 해 주었더란다. 노래방에서 같은 배게 부르면서 왜 눈물이 반짝하시며 그리 처량한지,분명 그게 재이가 벤 배게는 아닌것 같은데 말이다.)

 자꾸 맞춤법 틀렸던 남자(소개팅에서는 참 잘생긴 외모로 사로잡았는데, 처음엔 실수인 줄 알았던 오타가 오타가 아니었다는 걸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연애기간도..)


아주 사소하지만 그녀에게는 사소하지 않았던 헤어짐의 이유들이었다. 재이는 마치 뷔페집에 가면 맘에 드는 음식들을 다 한 번씩 골라 집어 먹어보듯 연애를 가볍게 많이 했다. 사귀는 것도 쉽고 헤어짐도 쉬웠다. 왜 그렇게 사랑은 꼭 절절하고 안타깝고 눈물 나야 하는가. 왜 그런 노래 제목도 있잖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녀는 오만했다. 우는 소리 질질 짜는 듯한 절절한 사랑노래는 질색이었다. 이렇게 쉬운 게임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어할까. 밀당의 짜릿함과 달콤한 맛만 즐기면 되지 왜 꼭 그 쓴맛을 보려고 난리야.


그런 그녀의 앞에 마침내 그가 나타났다. 100일을 못 가고 남자를 바꿔대던 재이에게 마치 정착하라는 신호를 주듯.  재이의 화려한 연애담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 그는 그렇게 성큼 재이의 마음에 훅 들어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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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월, 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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