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게 주는 선물, 산책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명상도 하고 유산균도 챙겨 먹었다. 왠지 그냥 오늘 일이 잘 풀릴 것만 날이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황금이라길래 요즘 챙겨 먹고 있는데, 잘 먹고 잠이 스르르 들었다. 2시간이나 쿨하게 자다가 (아 미쳐) 요가를 못 갔다. 좋아하는 스케줄을 놓친 자괴감에 꽤나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이 기분 얼마 안 가게 만들어야 한다. 안 좋은 감정이 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감정을 치환하면 된다. 잠깐 드는 감정은 당연한 일이지만, 계속 뇌에 속으면 안 된다.
뇌에 속지 않으려면 기분전환 할 수 있는 것을 즉시 해야 한다. 늘 좋은 선택지는 산책이다. 걷기만 해도 1분 만에 기분이 싹 바뀐다. 산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걷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싱그러운 자연의 풍경이면 아주 좋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날씨인지라 산책 대신 쾌적한 헬스장을 선택했다. 헬스장에 가는 도중에 날씨가 미쳤다 싶었다. '윽 너무 더워. 앞으로도 이렇게 습하면, 여름에는 헬스장만 가야겠네.'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음, 장소가 꽤나 중요해 보이지만 실은 ‘걷는다’는 그 자체가 본질이다. 걸을 수 있는 곳이면 된다. 문제는 어느 곳도 안걸어서 그렇지. 하기 싫어지면 자꾸 본질이 흐려진다. 그러니까 또 말하자면, 본질은 …
뜨거운 날씨 탓에 빠른 걸음으로 헬스장으로 질주했다. 도착했을 땐, 도보 10분 거리지만 강한 햇빛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몸은 자연스럽게 예열되었다. 엇, 러닝머신을 걷기도 전에 아까 그 별로였던 기분은 온데간데없다. 이쯤 되면 드는 생각은 또 '오길 잘했다'이다.
보통은 뛰지 않지만 숨이 약간 차오르는 정도로 꾸준히 걷는다. 스트레스가 있는 날엔 달리기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날엔 걷는 게 잘 맞았다. 둘 다 다른 영역으로 효과가 있었다. 잘은 몰라도 좋은 호르몬이 나오고 나쁜 스트레스는 빠져나가는 게 확실하다. 이 생각만으로도 다시 또 기분이 좋아지는 선순환의 트랙에 빠진다. 이 트랙에 빠지면 걷는 동안 강한 에너지에 휩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어떤 이름 모를 강력한 호르몬이 분출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떤 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아빠 코끼리만큼 크게 느껴졌던 문제가 갓 태어난 아기 코끼리 정도로 작아진 느낌이다. 그 느낌이란 게 중요한 거다. 문제는 변함이 없는데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같은 문제가 작게 느껴진다는 게 찐 수확이다. 이런 마음이 들면 풀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문제 해결 의지와 관련 있을 또 이름 모를 호르몬이 분출되고 있는 게 확실하다.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얻는 이점은 아주 크다. 일단 나의 감정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 가장 그렇다. 사람은 매 순간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선다. 걷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늘 걷고 난 후가 조금이라도 더 좋았다. 오래 걸으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정리된 마음엔 편안함이 있었다. 오래 걷기는 마치 명상만큼 효과가 있었다. 고민이 클 때는, 한 번의 걷기로 모두 털어내긴 어려웠지만, 같은 고민으로 여러 날에 걸쳐 여러 번 걸었을 때는 조금씩 나눠서 문제를 녹일 수 있었다.
보통날이었다. 밥도 잘 먹었고 건강한 과일 주스도 마셨고 잠도 푹 잤는데도 텐션이 영 올라오지 않는 날이다. 집중을 하려고 해도 멍하니 있게 된다. 상황만 받쳐준다면 소파에 힘이 풀린 채로 쭈욱 눌러앉고 싶다. 하지만,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은 그렇게 쉰다고 딱히 더 나아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할 일은 많아 마음은 조급한데 정신은 무방비 상태. 이 특수 상황에 난 무엇을 해야 잘했다고 뇌에 소문이 날까. 어찌하면 좋을까. 좋은 쉼을 해야 한다. 일단 낮은 강도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집 안에서 하는 간단한 정리도 좋지만, 가라앉은 상태라면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기분전환에 더 효과가 있다. 산책을 가자.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내 몸은 '그럴 힘도 없다고!'라고 소리치지만, 그것에 속지 말고 속외침을 무시하고 일단 나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면 벌써 성공의 스멜이 난다. 방금 전까지의 공기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어쩌다 베이커리를 지나갈 때 빵 굽는 냄새에 기분이 확 좋아지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감정이 확 바뀐다. 파란 하늘을 보고 푸릇푸릇 나무 색과 잔디 색을 보니 마음이 맑아진다. 소소한 것에 눈이 떠지면서 작은 기쁨을 느끼게 된다. 자연이 있는 곳에서 공기를 들이마시며 몸이 이완된다.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는 날엔 미세먼지 앱을 확인하는 편인데, 최고좋음을 확인하면 한번 더 기분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런 날은 나오는 게 맞지’라고 생각을 한다. 분명 나오기 전까지 꽤나 나를 설득시킨 것 같은데, 생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기분전환 할 맛 난다. 이때 역시나 드는 생각은 '걷길 잘했네’이다.
속 시끄러운 날엔 걷는 게 최고다. 마음속 소용돌이치는 소란함이 걸을 때마다 그 파동이 줄어든다. 걷지 않을 때는 오래 생각하기 힘든 환경에 있어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게 어렵다. 하지만 걸으려는 준비를 하면, 뇌가 마치 내가 시간이 많다고 자체적 판단해서 내가 진짜 생각하는 본질에 가까이 가도록 만들어주는 것 같다. 멍할 때는 뇌도 같이 멍~하더니 걸을 때의 뇌는 '나 이제 시간 많아. 빨리 생각 안해도 되니까 천천히 느긋하게 네 생각 정리해.'라고 시간을 벌어주고 난 그 루트를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해야 하나.
산책을 끝내고 들뜬 만족감과 함께 집에 들어와서 아까 내가 누워있던 곳을 본다. '나가지 않았다면 계속 그러고 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모습이 절로 상상되니 정말 더 나갔다 오길 다행이단 생각만 든다. 비록 나가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더 늦기 전에 산책을 다녀오니 꽤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낸 기분이다. 아, 산책만 갔다 와도 뇌가 이렇게나 좋아하나 보다. 뇌의 지속가능한 기분좋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주 산책을 해야겠다. 손으로만 말고 두 다리로, 말로만 말고 몸으로.
할 일이 많아 일로서 열심히 살아내야 하루 안에도, 너무 피곤해서 축 늘어지고 싶어만 지는 하루 안에도, 산책을 어떤 틈 사이에 넣어두자. 어떤 날이라도 산책을 하는 날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바쁜 하루에도 여유를 내야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그 여유는 산책으로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늘 알아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