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잡념과 함께 살아갈 힘
명상은 꿈이 아니다. 명상을 한다고 모든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잡념과 함께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명상이 좋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실제로 내가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다 어쩌다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명상은 평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간헐적 명상은 했지만 이렇게 습관을 들여 명상을 꾸준히 하기 시작한 건,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다. 요가를 할 때, 잠깐씩 주어지는 명상 타임이 있다. 그 짧은 시간에 명상을 경험했는데 나쁘지 않은 거다.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걸 지각하니 명상이 나한테 참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까지도 '뭐 혼자서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저 요가 시간 도중에 살짝 맛보기 같은 명상을 종종 했을 뿐이다.
요가원에 일찍 도착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출석 체크를 하고 손 소독을 하고 매트를 깔았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었다. 거울에 비친 몸을 보면서 요리조리 스트레칭을 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대자로 누워있는 사람도 있었고 아기자세로 쉬는 사람도 있었고 어려운 동작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은 눈을 감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사람이었다. 명상을 하고 계셨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자세를 유지하며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명상은 수업 시작 전까지 이어졌다. 그 모습이 괜찮아 보였던 걸까, 다음 날부터는 수업 전에는 허리를 꼿꼿이 고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이때부터 나의 명상이 시작된 것 같다.
요가 시작 전 명상은 루틴이 되었다. 명상의 방법 같은 건 몰랐다. 그래서 수많은 생각들이 둥둥 떠다니는데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명상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했다. 아마도 그건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좋은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런 작은 습관이 나중에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생각 안 했다. 명상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과 어울리는 그 '좋은 것' 같아서 그냥 했다.
왜 해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도 모르겠는데 그냥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했더니 어느 날은 문득 변화가 느껴지는 거다. 할 땐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알게 된 것들이었다. 분명히 초기의 명상에서 따라다닌 짙은 잡념들이 농도가 옅어진 것이다. 생각이 가벼워진 다음에 알았다. 이 변화는 요가의 도움을 받은 것 같다. 만약 요가를 하지 않았다면 명상의 효능을 빨리 맛보지 못했을 거다.
요가원 선생님은 동작을 가르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주고 판단하지 말라'는 그런 류의 말씀을 자주 하신다. 외우려고 하지 않아서 정확한 문장을 적진 못했지만 비슷한 결의 말씀이셨다. 요가 동작을 하며, 그 연습을 꽤 했더니 그게 명상에도 적용된 모양이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 많은 생각이 지나다녀도 '아 생각이 들어왔네'라고 인지하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거리면 '아 감정이 일어나네'라고 속으로 말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예전에는 그것에 매몰되었는데, 이제는 '아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왔네'라고 말하고 '곧 지나가는 거다'라고 다시 말해주었다. 마치 제 3자에게 말해주듯이 속으로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에 빠지지 않고 한 발자국 뒤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현실은 똑같은데, 보는 관점을 조금 달리하니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 물론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잘 안 되는 날도 있지만 잘 되는 날도 생겼다는 게 수확이다. 이렇게 요가+명상을 한 세트로 하면서 얻은 이점은 크게 2가지다. 첫째, 요가로 체력을 키우고 명상으로 마음을 챙길 수 있었다. 둘째, 요가로 현재 내 몸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며, 몰입하는 즐거움을 알았다. 명상을 하면서 지금 여기 있는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감정과 떨어져 10cm 옆에서 나를 볼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현재를 살면 행복하다는데, 그 현재를 잘 살려면 '몰입'과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충만감을 느낄 수 있고, 지금 내 모습에서 살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까. 요가와 명상을 함께 해서 좋은 이유이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늘 건강하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건강한 방향으로 데리고 갈 수는 있다.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는 느낌만 들어도 기분을 챙길 수 있다. 방향과 기분은 비례하니까. 기분에도 '옳은' 기분이란 게 있다면, 명상을 할 때의 그 편안함의 느낌이지 아닐까 싶다. 아직 명상의 경험이 짧아 '명상에 대해 뭘 쓰지'라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 느끼는 바가 많다. 전문가가 아니여도 명상을 하며 실제로 내가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게 찐후기 아닌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차가 어느 정도 있겠지만 명상 초보도 명상을 통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을 하며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수용하게 되면서, 더디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는 빠른 쾌락으로 얻어지는 기쁨에 비하면 아주 자극이 낮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평소에 꾸준히 하면서 얻어지는 기쁨은 아주 오래가기 때문이다. 초코케이크 한 조각 먹는 즐거움의 쾌락은 그 순간 최고조에 달하지만, 다 먹는 순간 급격하게 그 즐거움이 떨어진다. 하지만 명상은 올라오는 기쁨의 수치는 영 시원치 않지만, 올라오면 도통 내려갈 생각을 안한다. 초코케이크류의 달콤한 쾌락을 먹지 않는 건 어렵겠지만 양을 줄이거나 시간을 지체하는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명상은 꿈이 아니다. 명상을 한다고 모든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잡념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완벽한 타이밍이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이 평화로운 완벽한 때'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잡념을 없애는 쪽을 희망하기보다, 서서히 옅어지는 잡념과 함께 잘 살아가는 쪽을 택하는 게 맞다. 명상은 현실을 인지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기운을 만들어서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명상을 하는 동안, 너무 같은 것이 떠오르면 그것에서 매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빠져있지 않고 바라보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 그것이 옅어지고 사라지고 비워진다. 나중에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 해방의 기쁨이 쾌락의 기쁨보다 백만배 더 좋다.
짧은 경험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명상의 가장 큰 힘은 생각이 복잡해도, 생각이 단순해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와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같은 좌절을 만나더라도, 그 좌절이 어떤 마음과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명상은 자신을 꾸준히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지혜를 가져다주는 걸까. 명상은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성찰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요즘 명상으로 바뀐 마음이 아주 반갑다. 오운완 받고 오명완(오늘의 명상 완료)까지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