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라면을 먹다가 느끼는 쾌락

by 제인톤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온 이후로 한 끼라도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식단 관리까지는 아니고 이전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먹는 정도이다. 배달 음식보다 집밥을 차려 먹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지 못한 날엔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는 것을 인지하면 다음 한 끼는 조금 더 신경 써서 먹게 되는 효과가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기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건강한 습관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챙겨 먹기보다는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멀리하는 방향으로 식습관을 챙기고 있다. 그중 하나는 탄산음료와 가공식품을 덜 먹는 것이다. 집에서 갈아 마시는 과일 주스가 탄산만큼 맛있어서 멀리하는 게 생각보다 수월했다.



대체하기 어려운 음식도 있다. 바로 라면이다. 삼시세끼 라면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라면 종류별로 한 끼씩 챙겨 먹으면 맛에 권태로움도 덜할 것 같고 골라먹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그 정도로 평소에 라면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고 자주 먹기도 했다. 라면을 각종 이유 때문에 안 먹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약 라면이 몸에도 좋은 건강식품이라면 인기 폭발이지 않았을까. 짧은 조리 시간에 최강의 맛이 보장된다는 점이 라면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밤 10시 찾아온 유혹

라면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느 때나 먹어도 참 맛있다. 이 맛있는 라면이 가장 생각날 때는 자기 직전 침대에 누웠을 때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라면을 맛본 그날도 그랬다. 밤 10시 취침 전 갑자기 라면이 땡긴다. 순간 없던 생각이 강하게 밀고 들어오니 동공지진이다. '아 먹을 거였으면 아까 저녁에 먹었어야지' 스스로 되뇌지만 사실은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남편에게 선택권을 떠넘긴다. 옆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살며시 들을랑말랑 '라면 먹고 싶다'는 말을 건넨다. 남편의 반응에 따라 오늘 밤 운명이 달려있다. 내가 먼저 유혹하긴 했지만 남편이 내심 먹지 말자고 해주길 바라는 마음 반, 먹자고 해줬으면 하는 마음 반이다. 남편이 강하게 먹지 말자고 하면 절제할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남편은 보통은 자기 전에 내가 무얼 먹고 싶다고 하면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다음에 먹자고 하고 나도 꾹 참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본인도 라면이 먹고 싶었다고 한다. 신라면 더 레드에 꽂힌 남편은 계란 살살 풀어서 먹고 싶다고 했다. 표정은 이미 끓여서 먹고 있는 사람 같다. 갑자기 나도 파 송송 썰어서 먹고 싶을 뿐이다.



이제 말리는 사람도 없고 먹고 싶은 사람 둘만 있으니 그냥 먹어야만 할 것 같다. 여기서 라면을 먹지 않으려면 내가 스스로를 절제시키고, 남편까지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나에겐 지금 그럴만한 이성이 없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한시라도 빨리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신한다. 고민은 먹는 시간만 늦출 뿐, 소화도 시키고 자야 하니까 어여 먹을 생각뿐이다.




행동 개시

남편과 나는 먹자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나름 죄책감을 덜 느끼겠다고 나는 냉장고에서 싱싱한 채소를 꺼낸다. 끓는 물에 라면과 수프를 넣는다. 청경채, 버섯, 파를 넣고 계란도 푼다. 각종 재료들이 끓는 물에 투하되니, 이제는 정말이지 되돌릴 수 없다. 먹을 수밖에 없다. 좋다. 이렇게나 빨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라면은 신기방기한 음식이다.



완성된 라면을 그릇에 담고 식탁 위에 올린다.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첫 순간이 가장 들뜬다. 매운맛이 입 안으로 들어오니 뇌에서 엔돌핀이 분비되면서 그저 맛있다는 생각뿐이다. 그 찰나 또다시 이성이 마비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먹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 따윈 사라졌다.



남편은 그 매운 걸 국물까지 마셨다. 으, 보기만 해도 맵다. 나는 국물은 안 먹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막상 면을 다 먹고 나니 뭔가 상당히 아쉽다. 어느새 식탁 위엔 따뜻한 밥이 놓여있다. 난 맵찔이니까 적당량의 국물을 밥 위에 붓고 후후 불어대면서 먹고 있다. 뭐야, 생각만큼 진짜 맛있다. 저녁에 지은 밥이 햇반처럼 부드럽게 잘돼서 그런지 라면 국물과 환상의 호흡이다. 아, 지금 난 완전한 쾌락을 느끼고 있다. 곧 사라질 행복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금세 현실로 복귀했다. 주위를 보니 설거지 거리들이 남아있다. 양치도 다시 해야 하고 소화도 시키고 자야 한다. 10분 간의 쾌락을 즐긴 후에는 귀찮은 것들이 보인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후회는 안 하련다. 이미 먹었는데 후회해서 뭐 하나, 잘 먹었으면 그뿐. 남편과 양치를 하면서 거울 속에 비친 서로를 쳐다보니 웃음이 희미하게 번진다.




다시 찾아올 쾌락을 위해

라면을 먹지 않는 방법은 애초에 라면을 장 보지 않는 것이다. 집에 라면이 있으면 언젠가는 먹겠다는 거니까. 라면이 집에 있는 이상 언젠가는 지는 싸움이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을 뿐, 맛있게 잘 끓여 먹었으니 그걸로 된 거다. 이런 날도 있어야 다음 한 끼는 또 건강하게 먹어야겠다는 다짐도 하는 것 아니겠나.



자주 건강하게 먹고 가끔씩 라면을 먹는 핑퐁핑퐁을 잘해야겠다. 평소에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해야 밤늦게 먹는 라면의 맛을 더 크게 즐길 수도 있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 훨씬 맛있을 테니까. 다시 찾아올 쾌락의 순간을 위해, 내일부터 다시 건강하게 챙겨 먹어야겠다. 쉽게 먹는 라면보다 어쩌다 참지 못하고 먹는 라면에 너무 행복해질 것 같다. 그 강렬한 쾌락을 느낄 날을 위해, 다시 건강한 하루를 보내다 와야겠다. 밤 10시 최고의 쾌락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건강한 식습관들을 보내다 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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