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읽는 것만큼이나 자주 썼다. 쓰고 싶은 사적인 욕망이 있어서 쓴 건 아니었다. 잘 쓰고 싶은 생각도 크지 않았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게 조금 익숙해졌을 쯤엔 쓰는 일이 시작되었다. 어렸을 적 독후감이나 일기 정도만 썼는데 서술형이라니. 객관식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였다. 작품을 분석하고 그 위에 창의적인 내 생각을 올리는 작업은 낯설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큰 하나는 여전히 과제는 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거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써냈다. 주변에 열심히 과제하는 친구들 덕분이다. 환경이 다했다. 운은 그렇게 은밀하게 치밀하게 천천히 쌓여가고 있었다. 그땐 축적의 의미를 알 길이 없었다.
잘 쓰진 못했지만 읽는 눈은 있었다. 쓰고 난 내용들을 읽으면 논리도 창의도 무엇도 없었다. 난 주로 요약을 해갔던 것 같다. 글쓰기 재능이 타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 메타인지는 있었다. 내 생각을 글로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쓰는 일이 나랑 맞지 않는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아주 싫어한 기억도 없다. 글쓰기에 집착하지 않으니 부족한 부분이 보여도 고통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면 쓰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어느 지점까지 그저 쓰는 것에만 만족했기 때문에 시련이 크지 않았다. 돌아보니 글을 계속 쓰게 만들어준 힘은 열심히 했던 마음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아닌, 글쓰기를 대한 가벼운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잘 쓰지도 못하는데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그 차이가 뚜렷해 절망했을 텐데, 내가 잘 쓰지 못하는 만큼 욕심도 딱 그만큼이어서 글 쓰는 그릇이 깨지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사심 없이 충분히 썼던 시간들이 모아 모아 지금은 이렇게나 쓰고 싶은 욕망을 만들어준 게 아닐까. 다만, 지금은 현재 글쓰기 실력보다 더 잘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욕심 때문에 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실력을 빨리 늘려야겠다.
쓰는 일이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졸업했다. 쓰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때는 읽지도 쓰지도 않아도 되는데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읽고 쓰는 사적인 욕망을 채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서야 나는 읽으면 쓸 수밖에 없도록 4년 내내 세팅되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독서모임에서 독후감을 내고 토론을 하며, 환상의 짝꿍인 독서와 글쓰기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게 먼 길을 뚜벅이로 다니면서 오고 가는 길에 또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며 좋아했던 과거의 나는 정말 책에 진심이었다고 밖에 말할 길이 없다. 같은 책을 읽고 나누는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개운함이 있었다. 읽고 나누어야만 해소되는 감정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쓰는 일에도 점점 진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쓰면서 무엇을 배워왔을까. 부족한 글을 쓰는 것과 별개로 계속 썼던 시간들이 내 안에 쌓인 것은 분명하다. 쓰는 일의 가치를 잘 몰랐던 시절, 충분히 썼던 시간들이 무언가를 만들어주었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쓰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해 준 것? 쓰는 일이 나에게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 주는 건강한 도구라는 것? 이제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준 것? 지금까지 쓸 수 있도록 하나의 점들을 잇게 해 준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계속 쓰고 싶게 만드는 좋은 문장들을 축적했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나는 쓰면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 생각이 닿은 곳과 쓰면서 생각이 서는 곳이 달랐다. 쓸 때는 읽을 때 보다 더 천천히 생각할 수 있어 갈 수 있는 곳이 달라진다. 느리게 가는 일은 무언가 새롭게 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다. 천천히 가면 상상할 수 있는 틈이 있어서 생각의 확장이 일어난다. 쓰는 일은 느린 일이다. 느린 일을 해야 나는 더 높이 깊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읽을 때는 다음 문장이 기다리고 있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된다. 멈추지 않고 읽을수록 사유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글쓰기는 빈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여백이 충분하다. 무질서하게 떠다니는 머릿속 생각들을 모두 끄집어 글로 담을 수도 있다. 그 생각들을 확인하고 나는 가장 그럴듯한 문장을 발견한다. 읽기에서 멈췄다면 못 갔을 생각을 발견한다. 쓰면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쓰지 않았다면 어제는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본다. 그 생각들이 더해지면 조금 더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힘을 쌓는 것으로 글쓰기라는 도구를 잘 찾은 것 같다. 내게 이 도구가 잘 맞다.
글을 쓴다는 일은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쓰는 일이 아무리 내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글쓰기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들여야 하는 시간적 품이 있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정성을 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전의 문장을 쓰면서 나는 또 하나를 알아차렸다. 글쓰기는 나를 존중하는 도구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문학을 전공하던 처음에는 몰랐다. 쓰는 일을 생각했던 마음은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글쓰기와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방향키가 되어주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 인생의 무기로 만들고 싶다. 쓰는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시간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내가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