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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톤 Oct 27. 2023

내가 운이 좋았지

영문학을 전공했다. 영어나 문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 건 아니었다.



우리 과는 과제가 참 많았다. 내가 과제를 하기 싫어했던 것과는 별개로 과제가 적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정말 매주 해야 하는 게 많았다. 학기 내내 늘 읽을거리가 있었다. 문학책을 읽어야 했다. 과제를 하려면 먼저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에 일단 읽었다. 대체로 원서가 아닌 번역본을 찾아 읽었다. 어떻게든 영어로는 읽지 않겠다는 의지로 도서관에서 해석본을 찾았다. 인터넷을 배회하며 찾아냈다. 그래서 영어 실력은 늘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기특한 건 번역본을 찾지 못한 작품은 영단어 열심히 찾아가며 읽어가긴 했다는 것이다. 해석하다 시간 다 보냈다. 다행히 과제는 항상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하려고 해서 한건 아닌 것 같고 모두가 과제를 하는 분위기여서 그랬다. 다들 열심히 하는 덕에 더 많이 공부하진 않더라도 기본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분위기가 다했다. 같이 다닌 친구들 고맙다.



기어코 읽어가긴 했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1학년 때 했던 생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왜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 미쳤지?' '평범한 인물들이 나온 책도 많을 텐데, 왜 등장인물들은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거지?' 보통 사람들이 없는 게 신기했다. '이 문학 속 주인공만 그런 거겠지?' 그런데 다음 책도 그다음 책도 하나같이 문학 속 주인공들은 비극적이었다. '일부로 이런 작품들만 읽는 건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궁금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심각하게 극적인 상황에 있지도 않았으니 그 나이땐 정말 그게 어려웠다.



그전에 독서를 많이 했더라면 간접경험으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한 때라 그 서사를 따라가는 게 힘들었다. 이런 심리를 왜 내가 읽고 따라가야 하는지, 어떻게 또 이해해야 하는 게 옳은 거지 몰랐다. 아, 너무 심오해서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험 봐야 하니까 읽긴 읽는데 왜 이런 작품들을 읽는 거지 참 궁금했지만, 이 속마음을 질문하진 않았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궁금증이었지만 진짜 그 대답까지 알고 싶은 마음은 덜했나 보다. 정말 알고 싶었다면 물어봤을 테니까. 그렇게 왜 읽는지도 모르는 채 책을 읽긴 읽고 과제를 해야 하니 그저 했다. 꾸역꾸역 과제를 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다가 달리고 있는데 그 코스가 마라톤이었고, 얼떨결에 출전을 하게 되었지만 왜 뛰는지도 모르는데 옆에 수백 명이 같이 뛰니까 나도 그냥 뛰는 거다. 계속 의아해하면서도 뛰긴 뛰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전공 필수과목 수업이었다. 문학작품을 보고 리포트를 제출하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읽는  조금 적응을 했는데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 아주 비극적인 문학작품을 읽었던 날처럼 이번엔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랐다. 쓴다는  익숙하지 않을 때였다.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으면 페일이니까, 그럼 재수강하면서 한번  고통받을 수는 없으니까 쓰긴 썼다. 뭐라도 썼다. 그리고  기억에 결과가 좋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분석이 아니라 내용을 요약해  것이다. 자유토론을  때는 손들고 발표하는 식이었는데 나는 거의 손을 들지 않았다. 원래도 발표를 잘하지 않을뿐더러  말도 없었다. 그래도 수업을  듣긴 했다. 다른 친구들이 어떤 상징을 찾아 어떻게 리포트를 썼는지 궁금하긴 했으니까. 다음 리포트 과제 하는데 참고해야 하니까. 발표 내용을 듣고 속으로 '? 저게 저거라고? ? 저게  뜻이라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잘못 왔나 싶었기도 했겠다. 듣고도 이해  하는 마음이랄까.  당시 읽었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많이 이해하지 하고 보냈다. 주인공들 공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 다시 읽으면 그때보다는  이해해   있는데 문학작품 제목이 뭐였더라.. 끝까지 고통받는 주인공들 .  



두 번째 리포트 역시 어려웠다. 아침 9시까지 제출해야 했던 것 같은데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기억이 남아있다. 같은 과 친구들도 다 같이 좌절하고 있었지만, 내 몫은 내가 책임져야 했으니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했다. 그때도 써야 하니까 썼다. 그래도 열심히 써냈고 마지막에 단어 옆에는 정말 내 심정이 담겼다. 끝단어 옆에 'ㅠㅠ'라는 이모티콘을 썼다. 나중에 교수님께서 리포트를 다시 돌려주셨는데 'ㅠㅠ' 옆에 'ㅋㅋ'를 붙여주셨다.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신 걸까. 그 상황이 웃겼던 걸까. 글이 웃겼나. 어쨌든 낙서한 걸로 안 봐주신 게 다행이다.



이렇게 나의 글쓰기 수업은 대학교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문학 작품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글을 쓰고 토론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해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과제를 하는 일이 적응이 되었다. 읽고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의 마음속에 품는 질문의 형태도 점점 변화하고 있었다. 문학 작품 속 인물이 몰입하면서 이야기 안에서 궁금한 것들이 조금씩 생겼다. 책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었다. 문학작품은 답이 없다. 그래서 내가 닿기에 아직도 먼 곳이다. 그래서 더욱더 가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작품 속 문장을 만나고 또 만나면 알아차리게 되는 지점이 늘 있었다.

 


공강시간 대부분은 도서관에 있었다. 과제 때문에 책가방에는 항상 문학책이 있었다. 그렇게 가방 속에 수많은 책들이 바뀌어가며 나는 책과 가까워진 줄도 모르는 상태로 졸업했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다. 졸업을 하고 나서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날에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고 있는 나를 보며, 책과 많이 가까워졌구나 생각했다.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싶어서 독서모임을 가고 있는 나를 보며,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생각했다. 여행 갈 때 캐리어에 책을 넣는 나를 보며, 책은 이제 내 쉼이구나 생각했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가방에 꼭 책 한 권을 가지고 가는 나를 보며, 책도 내 친구가 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의 난 읽으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정확히 이해할 수 없어도 정답은 내리지 못했어도 그때 내가 고민하며 생각했던 것들이 내 안에 쌓인 것은 분명하다. 그때 난 어떤 생각을 쌓아갔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삶이 있다는 것?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 그뿐이다라는 것? 어떤 삶이라도 타인이 판단할 수 없고 책임도 만족도 평가도 본인 몫이라는 것?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인생도 최선을 다한 인생이었다는 것? 평범한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어떤 생각이었더라도 쌓아갈 수 있었던 시간들에 새삼 감사하다. 그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서 꽤 긴 호흡으로 지금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시간이 된 것 같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돌아보니 영문학을 전공한 건 진짜 내가 운이 좋았다. 그땐 미처 몰랐다. 운이 좋아서 문학작품을 맘껏 읽을 수 있는 곳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처음 문학작품을 읽고 등장인물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해서 그저 막연했던 시간에서 이제는 책을 좋아해서 먼저 찾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으로 오게 되었다. 애쓰면서 보낸 시간들은 어디 가는 게 아니더라. 애정한 것들은 결국 내 안에 쌓이는 거였다. 문학을 전공했던 덕분이다. 지금까지 책을 가까이할 수 있게 만들어준 긴 시간들에 새삼 고마워졌다. 이제 보니 책으로 운을 쌓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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