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전 vs 지금
약속 시간 5분 전, 연락이 왔다. "미안, 나 30분 늦을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 그럼 미리 말해주지. 이 사람 맨날 이래.'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읽고 싶었던 책. 중간에 읽다 만 지점부터 다시 읽었다. 1분 후. 책에 빠져 들었다. 술술 읽힌다.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지각한 사람이 도착했을 때,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늦어서 미안해." 나는 말했다. "덕분에 책 재밌게 읽었어." 내 화는 어디로 갔을까.
1분의 힘
1분의 힘을 간과했다. 하지만 1분은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화를 평온으로, 포기를 다짐으로, 우울을 괜찮음으로. 1분 전에는 확신했던 것이 1분 후에 흔들린다. 1분 전에는 싫었던 것이 1분 후에는 괜찮아진다. 1분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이 1분 후에 가능해 보인다. 1분이면 충분했다.
일관성이라는 덫
일관성 있는 것 좋다. 하지만 가끔은 일관성을 내려놓아도 된다. 일관성이라는 늪에 빠지면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을 만들고, 거기서 벗어나는 생각이나 행동을 억누른다. 작년에 한 말과 다르게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어제 강하게 주장한 것과 다른 생각을 하면 신뢰를 잃을 것 같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바뀌고 있는데 인정만 안하게 되더라.
우리는 매 순간 바뀐다. 방금 전에 읽은 한 문장, 지금 떠오른 생각, 10분 전에 들은 말. 모든 것이 나를 조금씩 바꾼다. 1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수 있다. 일관성은 착각일 수도. 우리는 1분마다 흐르니까.
바뀌는 게 정상
누군가의 바뀌는 행동과 말을 보면서 일관성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바뀌고 있는 중. 우리는 서로를 고정된 존재로 본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하지만 '원래'라는 건 없다. 나도 바뀌는데 다른 사람이 안 바뀔 이유도 없다.
어제 "절대 안 해"라고 말했던 사람이 오늘 그걸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사람도 달라진 것이다. 1분 전의 그 사람과 지금의 그 사람은 다를 수 있다. 어제의 그 사람과 오늘의 그 사람은 다르다. 누구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두 1분마다 조금씩 흐른다.
매일 새로운 걸 듣고 보고 느끼는데 생각이 안 바뀐다는 게 더 이상하다. 입력은 매일 달라지는데 출력이 매번 똑같을 리 없다. 모두 흐르고 있다.
감지되지 않는 변화
매 순간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린다. "어? 나 예전이랑 많이 달라졌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변하고 있다. 생각은 달라지고 있다. 1분마다 조금씩.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책도 마찬가지다. 벽돌 책을 읽는다. 700페이지 짜리. 어제 5페이지, 오늘은 10페이지, 자기 전마다 몇 장씩 읽는다.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한 달 후, 책의 절반을 넘겼다. 매일은 똑같아 보였는데, 시간이 쌓이니 어느 새 끝이 보인다.
1분 후의 자유
1분 후에도 바뀔 수 있다는 건 자유다. 지금 화가 나도 1분 후에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 지금 포기하고 싶어도 1분 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지금 확신해도 1분 후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과거에 갇히지 않아도 된다. 1분 전의 생각, 어제의 결심, 작년의 다짐. 거기 갇힐 필요 없다. 1분 후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를 수 있다. 지금 틀렸어도 1분 후에 옳을 수 있다.
오늘 오후,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쓰기 싫다. 내일 쓸래.' 유튜브를 켰다. 1분 후. '아니다, 지금 쓰자.' 노트북을 열었다. 한 줄을 썼다. 그러자 다음 줄이 나왔다. 1분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1분 후에도. 1분 후에 바뀌어도 된다는 생각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고, 지금을 가볍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