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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톤 Oct 24. 2021

쓸데없음의 미학

'쓸데없다'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다이다. 쓸데없음이란 어떤 목적 없이 순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이 쓸데없음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나는 왜 쓸데없는 것에 진심일까.



쓸데없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보인다

책을 좋아한다. 최근까지는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것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잘 몰라도 조금만 알아도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 설명할 수 없더라도 충분히 마음이 먼저 좋아할 수 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순간 더 사랑에 빠지지 않나. 알아서 좋아하는 것도 있고 좋아하니까 알아가고 싶은 것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뭐 좋아하는 게 별건가. 내 마음이 가면 그게 좋아하는 거지. 그런 편에서 나는 책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쓸데없음을 하고 있을까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나에게 당장 도움이 되는 쓸데있는 책과 읽고 싶어서 읽는 쓸데없는 책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내가 읽는 문학작품은 쓸데없는 것에 분류될 것이다. 소설과 시는 읽어도 읽지 않아도 지금 당장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것은 쓸데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쓸데없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어떤 목적 없이 떠나는 이 행위를 할 때 집중력이 생기고 그 안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전히 꾸준히 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쓸데없음은 문장을 수집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책에서 대화에서 가사에서 문장을 수집한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모든 문장을 필타해왔다. 물론 저작권의 문제로, 나의 폴더에 비공개로 저장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와서 보는 것도 아닌데 이 쓸데없음을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상하다. 이 쓸데없는 행위를 할수록 왜 내적세계가 확장되는 것 같다.



쓸데없음에 진심인 사람

쓸데없음을 하고 있는 시간은 아깝지가 않다. 반대로 내 일상에 쓸데없음이 없는 것이 걱정된다. 모든 일에 목적이 있고 쓸데있음에만 진심인 사람은 인생의 효율이야 좋겠지만은, 그 마음도 괜찮을까. 건조하지 않을까. 하루 종일 쓸데없음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쓸데있는 일을 하면서도, 그 틈틈이에 쓸데없는 것을 챙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어떤 타이밍에 좋아하는 스포츠를 본다거나, 웹툰을 본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쓸데없음을 해줘야 한다. 숨통이 트일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게 틈틈이 깊은 숨을 내쉴 수 있다면 탈이 나지 않는다. 탈이 나는 사람은 모두 숨을 얕게 쉬거나 숨을 쉬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쓸데없음은 내적평온을 찾는 일

영국의 한 채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인터넷 없이 독방에 5일 동안 갇힌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개인물건은 단 3개. 단, 전자제품은 허락되지 않았다. 영상 속 독방은 감옥 같지 않고 웬만한 원룸 오피스텔 방보다 좋았다. 음식은 충분히 제공되었다. 참가자들은 5일 뒤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5명 중 단 3명만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실패한 이유는 고독감과 권태감 그리고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이널까지 간 참가자 1명 역시 상태가 평범하진 않았다. 이렇게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한 참가자들의 공통점은 고독을 즐기는 법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을 무난하게 통과한 1명의 참가자가 있었다. 그는 혼잣말을 하거나 환각을 느끼지도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림에 집중하며 자신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실험에 참가한다면 5일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불안해하지 않고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어떤 물건을 가져가야 할까. 쓸데없음을 위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 펜, 공책이었다. 그리고 5일 후에 반드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전제가 확실하다면, 읽고 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일 후에 책을 출간한다는 생각으로 읽고 쓰는 것에 집중한다면 외로움을 평온함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쓸데없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실은 나를 가장 평온한 세계로 데려가준다고 생각한다. 쓸데없음 안에는 내가 되는 진정한 쓸데있음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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