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를 가는 길은 즐거운 고생길이요, 고단한 꽃길이다. 걸음마다 떨어진 땀방울 주변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화사히 핀 꽃이 살풋 웃음짓는다. 오르막에 무거워진 다리가 한층 느릿해질 즈음이면 내리막이 고개를 내밀며 반긴다. 삶에 지쳐 멍하니 정신을 놓고 걷다 보면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골목 풍경이 하나 둘 눈에 담기기 시작한다. 텅 비어 있던 마음과 생각에 색이 조금씩 덧입혀진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그들에겐 어떠한 사연이 있을까? 상상을 비단자락 펼치듯 부드러이 풀어내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은 무채색을 버리고 수채화 한 폭을 품게 된다.
3년 만에 서울지구 연합 채플이 부암동 CCC 본부에서 열리게 되었다. 정겨운 고택이 북한산과 인왕산을 수놓은, 가히 도심 속 시골이라 불릴 만한 동네, 부암동. 복작복작한 시내를 벗어나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비 없는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제법 날이 선선해지는 8월 말 저녁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7월 한낮에 그 언덕을 올라가라는 명이 내게 주어졌다면 염치 따질 것 없이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기 직전, 하얀 벽돌이 귀엽게 열을 맞추어 두른 식당 하나가 보인다. '부암동 가는 길'. 즐거운 고생길, 고단한 꽃길인 '가는 길'을 알리는 지표다. 식당을 지나쳐 놓인, 한번 와 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놓인 오르막이 곧바로 눈에 띈다. 곁눈질로 흘긋 바라보고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어본다. 하얀 돌담벽을 장식한 꽃무리와 사진을 지그시 바라본다. 잠시 후, '가는 길'에 한 걸음을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열 걸음, 스무 걸음... 고생길에 고단한 발자국을 찍어 나간다. 길가에 돋아난 풀잎과 꽃송이가, 살포시 내려앉는 석양빛을 반사해 그 발자국을 어루만져주기를, 그렇게 고단함을 씻어내 주기를 조용히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