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의 비애

by 한걸음

습설. 물을 한껏 머금은 눈. 올해 첫눈은 무겁게 내렸다. 베란다 창으로 내다본 하늘은 회백색 아파트 외벽의 창백함 보다 더 우울하다. 첫눈이 우울하다니. 요즘 내 포지션이 그렇다. 그곳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당장은.


누구도 밟지 않은 눈 내린 산을 오르고 싶다. 하얗게 덮어버려 하얗디 하얀. 오로지 흰 것만 존재하는 곳. 마음의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입산 금지 재난문자가 뜬다. '그냥 갈까?' 싶은. 피곤하게 남발해 대는 것에 화가 난다. 정작 비상계엄에는 침묵을 지키면서. 무시하고 오를까 싶다가 허공을 빽빽하게 채우며 세차게 활강하는 눈의 기세에 압도당한다. 이런 날 등산은 용기일까 무모함일까.


하루를 꼬박 기다렸다. 바닥으로 힘차게 내리 꽂히던 눈은 폴폴 옆으로도 위로도 오르락내리락한다. 상승 뒤의 하락. 당연한 자연의 법칙.


등산로 초입. 가파른 오르막 중간쯤의 소나무. 근사한 수형 탓에 어울리는 감탄사만 백날 찾다가 겨우 '와... 와..'만 내뱉게 하던 그 나무. 하산 시 언제나 충격 방지용으로 안던 그 나무의 주 기둥이 반으로 꺾였다. 가슴부터 우듬지까지 눈 속에 박혀 딱 두 동강 난 상태. 요가의 견상 자세처럼. 옆으로 크게 펼쳐진 우아한 가지와 촘촘한 바늘 잎에 쌓인 습설의 무게를 기둥은 이겨내지 못했다. 과하면 부러진다. 자연은 감정이 없으니까.


오를수록 많아진다. 눈 돌리는 곳곳에 꺾이고 찢기고 부러진 나무들. 대부분이 소나무와 잣나무. 간혹 아직 잎을 다 떨구지 못한 단풍나무도 튤립나무도 예외는 아니다.

늘 푸른 그래서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소나무. 사철나무는 알았을까. 폭설이 올 거라는 걸.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감당해야 할 운명이라는 걸. 마침내 두 동강 나거나 운이 좋아야 멋들어지게 뻗은 그 가지 하나만 잘린다는 걸. 알았을까.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 처참함을 느끼는 건 내 감정일 뿐. 자연은 주기적으로 약한 고리를 끊는다. 그래야 산이 건강해지니까. 그게 자연의 순리. 안타까우면 긴 장대를 들고 나무 위 수북이 쌓인 눈을 털어줘야 한다. 여기저기 쌓이는 족족 장대로 털어내는 상상도 해본다. 가능할까.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 그래서 두렵다. 폭설에 부러진 상록수는 산에도 우리에도 있다.


몇 주 전, 등산로 초입. 지금은 견상 자세로 누운 그 소나무를 집고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만난 한 중년의 남자. 반짝이는 구두, 칼 각 잡힌 정장에 카멜색 가죽 가방을 손에 쥔 채로 산기슭 가파른 곳을 오른다. 텅 빈. 갈 곳 잃는 눈동자. 보았던 남자다. 아마 2009년이었을까. 그때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산으로 출근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폭설에 부러진 상록수들이.


하인리히 법칙. 산으로 출근하는 남자들이 늘어간다. 재래시장 목 좋은 가게마저 손님이 줄어든다. 대형 마트 50% 할인 먹거리를 먼저 잡으려 싸우는 사람들을 본다. 금방 쓰고 준다며 돈을 융통하려는 지인이 늘어간다. 요즘 경험하는 것들.


눈이 내린다. 성장률은 점점 더 낮추어 발표하고 생산 가능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발 빠른 대기업들은 구조조정과 동시에 현금을 쌓고 있다. 마지막까지 몰린 자영업은 초토화 상태다. 국가나 기업 거기에 개인 부채 또한 모두 한계치까지 왔다. 버티려면 성장 오로지 성장만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눈이 짙어질 전망이라는 소식뿐이다. 수출은 줄어들 예정이고 내수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이다. 환율은 오늘이 제일 싼 건 아닐까 싶게 암울하다. 거기에 더해 비상계엄을 내리는 내란 수괴와 그자를 옹호하는 집권 세력은 모든 비관적인 것을 가속화한다.


그래도 부동산 카페 분위기는 거시 경제와 다르게 상승 오로지 상승만 외친다. 무조건 서울로, 강남 4 구로, 대단지 신축으로.

주식 카페는 코인의 등락에 환호와 절망이 교차한다. 끌어올 수 있는 돈을 다 끄러 모아 코인, 코인, 코인뿐이다.

시뻘건 눈으로 돈, 오로지 돈만 부르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익과 손해 앞에 모든 가치들은 설 곳이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공항에 가봐, 너도나도 해외여행이야.' '신고가 찍는 아파트가 있는데 무슨 말이야.' '수출이 역대급이라는 데 헛소리 말아.'


눈이 팔랑팔랑 소담스레 내려 대지를 촉촉이 적시다 멈출지. 온 세상에 눈의 무게를 각인하게 할 폭설이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눈이 내리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만 있다.


대다수에겐 디스토피아. 소수에겐 유토피아. 불황에도 벼락부자는 나온다.

대기업 총수 일가는 경제부총리는 위정자들은 폭설에 자유롭다.


지금 필요한 건 메타인지 즉 자기 객관화가 아닐까. 내가 선 자리가 양지인지 음지인지. 혹 곁가지 풍성한 상록수는 아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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