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감기 같은 것이 우울 증상이지만 이것이 심각해지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일단 우울감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감정과 기분은 엉망이 되며, 세상 모든 것이 압박으로 다가온다. 뭔가 늘 불안하고 나 자신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수면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수한 성적은 기본이었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 촉망받는 직업을 가졌던 숙영이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그녀의 모든 삶이 완벽해 보였다. 그런 숙영이는 나에게 있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연락이 뜸해지고 소식을 잘 전해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쁘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왜인지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그녀는 그동안 내가 알던 멋지고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제법 큰 키에 건강미 넘치던 그녀의 몸은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 말라 있었고, 밝고 자신감 있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었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사실 입꼬리를 올리는 것조차 힘겹다는 것을.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버스에서 쓰러졌고, 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몸이 좋지 않으니 자연스레 평소처럼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기가 벅찼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것이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 식사는커녕 잠도 잘 자지 못해 병원을 오가며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그동안 그녀가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그녀의 병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됐다.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우울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수면 부족이었다. 잠을 잘 수 없어서 괴로울 뿐 아니라 부족한 수면 탓에 더욱 예민해지고, 신체는 점점 지쳐갔다.
우리는 흔히 남들에게 인정받고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야 성공한 것이고, 그것이 곧 행복함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나 또한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치열하게 매일을 살았으며, 가족들이 인정해주고 기뻐할 때 비로소 나도 기뻤고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다고 착각했다.
오히려 그것이 내게 부담과 불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숙영이도 어쩌면 인정과 성공이라는 둘레에 갇혀 아픈 몸은 스스로 쓸모없는 몸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부담과 불안으로 작용해 결국 마음이 아픈 아이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숙영이도 나도 자극적인 성취와 인정을 통해 쾌락을 느끼고 그것에만 반응하다보니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숙영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감기 증상처럼 가벼운 우울증상을 겪기도 한다. 나 또한 스트레스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우울해하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우울감에서 벗어나고자 자극적인 감정들을 찾아 헤맸던 적도 많았다.
평소에는 별로 즐기지 않는 술을 마신다거나,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나이트클럽에 간다거나, 쇼핑을 하거나, 자극적인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거나 직접 하는 것 등 다양한 자극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 또한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잊게 해줄 뿐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은 더욱 배가 됐다. 자극적인 쾌감을 주고 순간적인 에너지를 주는 일련의 노력들은 근본적으로 내 감정을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됐다. 오히려 교감신경을 자극해 흥분한 상태를 유지하고 그것이 잦아지면 다시 우울감이 찾아왔다.
결국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도서를 섭렵했고, 나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 부던히도 애썼다. 그 결과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동안 나를 짓누른 우울감의 원인이 자극적인 성취와 인정에 사로잡힌 나 자신이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작지만 큰 행복을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명 ‘소확행’이다. 이것은 대단한 무엇이 아닌 일상에서 자주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소확행을 통해 우리 몸에 ‘세로토닌’이라는 안정 호르몬을 분비시켜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교감신경계를 안정시킬 수 있다.
*실제 인물의 이름이 아닌 가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