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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pr 09. 2023

산문적인 인간을 위한 변명(3)

비가 그친 뒤


비가 그치고 빗방울만 남은 창가 너머로 시선을 던져본다.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 자국을 거울로 바라볼 때 떠밀려오는 아쉬움처럼 떠나버린 비가 못내 그립다.



우산을 접은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가 부럽기 때문이 아니라 외출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텅 빈 공허함만 남았다.



참을성이 부족한 공허함은 지체하지 않고 시계태엽을 뒤로 감아버렸다.



눈을 들어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모래사장 위에 서 있었던 때가 있었다.



잔잔한 파도가 발끝을 간지럽히는 모래사장 위에서 따가운 햇살을 두 팔을 벌려 진심으로 받아들였었다.



찬란한 햇살은 수평선을 향하고 있던 나의 시선을 흐리게 만들었고, 오목해진 시선을 멀리 던지며 축복의 온기를 누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뜨거운 바다는 큰 바람을 몰고 오는 법이었다.



언제 햇살이 따가웠었는지도 모르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다. 머리 위로 빗방울이 가슴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조용했던 파도가 바람의 힘을 빌려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어느새 파도가 모래알을 쓸어가버려 디딤발이 헐거워졌고 남아있는 모래들을 발가락으로 힘껏 움켜잡았었다.



하지만 그러기를 얼마 버티지 못했었다. 금세라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들과 함께 서 있던 바다는 마치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았던 듯 아득해졌고, 그만큼 시간은 저 멀리 흘러가버렸던 것이다.



눈앞을 가린 빗방울을 손으로 훔쳐내자 보이지 않던 수평선이 저 멀리 성난 파도 너머로 어렴풋이 줄을 그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이 두려웠던 그 경계선 앞에서 혼자만 남은 줄 알고 고개를 돌려보니 다시 발끝에서 속삭이던 파도가 하얗고 하얀 포말들을 남겨놓고 나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얗고 하얀 포말들을 보는 동안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들리지 않는 소리를 눈을 감고 더듬듯이 찾는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이윽고 포효하는 바람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고개를 들어보니 파도가 저 멀리서 포말을 몰고 오는 중이었다.



꼼짝없이 굳어버린 나는 룻의 아내처럼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하얀 포말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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