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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LSD

by 이각형



제가 예전에 알던 LSD는 자동차 구동계 부품이었습니다. SUV 차량이 뻘 같은 곳에 한쪽 바퀴가 빠졌을 때 탈출의 구동력을 다른 쪽 바퀴로 배분하는 장치였던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라톤 세계에서는 장거리훈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LSD는 하프마라톤을 뛰고 난 뒤에 AI에게서 훈련 프로그램을 짜달라고 해서 알게 된 용어였습니다.


런데이 어플에서도 별도로 LSD 훈련 모드가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마라톤 완주를 위해선 핵심적인 훈련 프로그램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하프 마라톤을 처음 달릴 때엔 이런 훈련을 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하프 코스를 뛰면서 정말 힘들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풀코스는 기필코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주 대회를 마치고 하루 종일 발바닥 근육통으로 시달렸을 정도로 근지구력이 형편없었던 겁니다.


얼마 전 마라톤 선배님과의 통화에서 선배님께서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선 매주 1회씩 장거리 훈련을 강조하셨던 만큼, 그리고 바쁜 주말의 일정이 생각보다 일찍 끝난 만큼 운동화를 신고 아무 생각 없이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체력적 부담이 덜한 6분대 페이스로 달렸는데요. 역시 장거리는 힘들긴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역시나 바깥쪽 발바닥 통증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동안 아파왔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었습니다.


처음엔 어제 10km를 뛰고 오늘 또 장거리를 뛰니까 아픈 건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발목의 아치가 무너지다 보니 파생된 통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km를 넘기고부터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해서 남은 거리를 이를 악 물고 뛰어야 했을 정도로 통증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뭐, 어차피 인생이란 것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물리학자는 삶의 대부분의 문제는 밀도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24개월의 군복무기간을 20살부터 48년 동안 매년 2주씩의 복무 방식으로 바꾸게 되면 병역의 의무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낮아질지도 모릅니다.


달리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풀코스 42km를 매일 6km씩 달리는 걸로 대체해 보면 42km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거리가 되지만, 이 장거리를 단 몇 시간 만에 뛰어야 하니 체력적 부담은 상당히 높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오늘 그의 딱 반 정도 되는 거리인 21.4km가량을 뛰었습니다. 처음 달려 본 LSD 치고는 너무 의욕이 앞섰던 것 같기도 합니다.


1시간이 될 때까지 별로 힘들지도 않아서 속으로 아 이제 하프는 힘들지 않게 뛰겠구나라며 안일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장거리는 역시나 중후반부가 승부의 관건이었습니다. 18km쯤 되니까 정말 언제 끝나나 싶었으니까요.


그래도 첫 대회에선 12.3km 이후 걷다 뛰다를 수없이 반복해서 간신히 완주했던 반면에, 오늘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뛸 수 있었다는 점에 자신감이 조금 붙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하프를 뛰고 난 소감이 "등산보다는 재미가 없다"였는데요.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달리기가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엔, 아니 울적함이 찾아들 마음의 자리에 모조리 단 하나의 목표의식인 "완주"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 덕분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몸이 너무 고단해지기 때문에 마음의 언저리조차 신경 쓰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 러닝에 취해 계속해서 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술처럼 일종의 착시효과와 최면효과가 있지만, 달리기는 신체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건강을 지켜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나 오늘도 글이 늘어지고 있네요.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봅니다.


오늘 밤은 맥주가 아니라 완주에 취해 잠들 수 있기를......



(P.S.)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시원했다
그제서야 온몸이 흠뻑 젖은 걸 알았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치 텅 빈 거리에 가로등이 꺼질 때처럼.


그래도 원점으로 돌아왔다
비록 쓰라린 통증도 함께였지만.


그래, 결국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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