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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May 31. 2023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

책을 읽는 나만의 이유


오늘 어떤 사람이 자신이 독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쓴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반대로 사람들이 보통 책을 멀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써 책을 읽는 나만의 이유를 간접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참 독서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내게 책은 삶을 시간적 연속성 안에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내일을 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지하철 같은 곳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책 바깥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때마다 외딴섬에 홀로 있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주위를 돌아보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고 있었고, 잠들어 있거나 전화를 붙잡고 있거나 핸드폰을 연신 들여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러한 생경한 현상을 마주 보면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내게는 책이 인생이라는 배의 돛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혀영심에까지 빠져들지는 않았지만 책이 없으면 하루라도 버틸 수 없었는데, 그만큼 독서가 는 의미에 심취해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토록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사람들은 왜 외면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한 적확한 답을 찾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내가 처음 찾아낸 시선에는 편견과 오해가 있었다.



사람들이 독서를 멀리하는 이유로 제일 처음 떠올린 것은 독서의 즐거움을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활동이 장기간 취미로 자리 잡기까지 필요한 것은 재미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에서 착안했었.


따라서 독서가 외면받는 건 순전히 독서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독서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 냈을 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것이 느껴졌었다.


나의 경험을 통해 반추해 보면, 나는 독서가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에 책을 붙잡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책 속에서 발견한 그 무엇이 나를 지속적으로 독서로 이끌었다.  


더군다나 그 무엇이란 것은 그대로 멈춰 있지 않았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폭과 깊이가 확장되곤 했다. 


우주의 팽창이론처럼 그 무엇이 확장하는 속도도 생각보다 빨랐고,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없는 나로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붙잡고 있었어야만 했다.


그리고 재미라는 건은 일정한 수준에서 지속되지 않는 법이어서 재미가 떨어지면 더 이상 취미생활에 편입될 수 없는 법이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재미를 잃어버리는 일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엔 재미라는 단서는 근거가 약했다. 별수 없이 나는 다른 근거를 찾아야 했다.


다른 이유는 의외의 방법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독서를 하나의 취미생활로 전락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취미와 비교해 볼 때 비로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보통 책에서 재미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책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출퇴근길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적 관계망에 빠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핸드폰으로 무언가 재미있는 걸 보는 일이 취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가 주는 즐거움은 불투명하고 일시적이다.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는 동안 한창 부풀어진 감수성은 최종회가 끝나기도 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일쑤였다.


그리고선 언제 또 그러한 감성적 충만함을 주는 드라마가 시작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거나 최근에 빠져 있었던 감성적 충족을 그리워하기만 했다. 감성적 충족감은 반동작용이 상당히 큰 하나의 활동이어서 충족감의 원인이 사라지면 일종의 허무감을 가슴속에 심어주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에게는 감성적 충만함 외에는 부족한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색다른 감성적 경험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 특별히 잘못되었다거나 부족하다는 점을 느끼지 않았다. 예민한 사람이 일에 집중할 때 식욕이 사라지는 것처럼, 풍부한 감성적 경험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그의 삶의 다른 분야에서는 특별한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는 방증이었다.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면 문제의식에 대한 자각으로도 이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인생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왔을 때 불현듯 나는 책을 읽지 않고 시류에 편승해 살았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잠시 동안 그들이 부러웠다.


삶에서 어떤 문제를 직감한 사람들은 반드시 답을 구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답을 줄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을 때 책으로 파고든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은 삶에서 방향을 잃어버렸다고, 길을 잃어버렸다고 자각한 사람들이었다. 땅이라는 든든한 기반 위에 두 다리로 서 있었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우리에게 봉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그 어떤 신탁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세계가 제공하게 된다면 그는 세계에 대해서 고민도 하지 않을 것이며, 고민을 하지 않은 만큼 질문 또한 던지지 않을 것이다. 그에겐 세계가 자신이고 자신이 곧 세계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세계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무언가를 하기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퇴근하고 축 쳐진 몸을 소파 위에 던지곤 했던 사람의 집에서 갑자기 그토록 익숙했던 소파가 사라지게 된다면 그는 매우 놀랄 것이다.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소파에 편하게 몸을 눕힐 수 있었지만 갑자기 텅 빈 공간만 남게 된다면 상실된 소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결국 소파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소파가 우리 곁에 있었을 때에도 우리는 소파라는 사물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인식은 정확히 말해 소파의 존재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갑자기 사라진 소파라는 사물의 상실은 우리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지며, 이때 비로소 우리는 소파라는 사물에 대해 존재적 의문을 갖게 만든다.


따라서 삶에 대해 어떤 총체적인 문제를 인지한 사람은 사라진 소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자신에게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다시 말해 난파선의 조난자와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삶이라는 바다 위에서 부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그 존재를 상실했다는 자각의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우리에게 이질적이다. 때로는 적대적이기도 한 이질적인 세계 안에서 우리는 삶을 영위한다.


이처럼 세계 안에서 방향을 잃었다는 자각, 이러한 자각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이 가득한 사람은 조난자와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무언가 의지할 것을 찾게 된다. 그는 사회적 통념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깨닫기 전까지 자신이 의지했던 것이 바로 사회적 통념이었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토록 같은 고민을 수없이 해왔다고 간주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문제에 전념했던 고결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삶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탐구하고 사유해 온 고결하고 숭고한 정신은 자신만이 느꼈던 문제의식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사유를 통해 구축해 놓았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방향상실에 대한 감각을 보상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책을 붙잡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렸다고 자각한 사람들은 역사의 지면 위에 고결한 정신을 수놓았던 수많은 선배들에게서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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