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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un 01. 2023

혹시 이런 분 계십니까?


혹시 이런 분 계십니까?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꼿꼿하게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아, 물론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나무에 달라붙은 채 자신을 의탁하고 있다면서 나무를 보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귀신이 보인다는 환각적 견해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굳건히 서 있는 나무를 보고서 불안을 느끼는 일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은 붓과 물감 그리고 한 폭의 캔버스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그리고 싶으신가요? 불만을 그려낼 것인가요? 아니면 파랑새에 불과하더라도 희망을 그리실 건가요?

희망을 그려내고자 하신다면 그건 분명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느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지개를 그리는 사람은 단지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전 무지개를 봤기 때문이 아니라 맑게 개인 하늘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무지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입니다.

세잔느를 포함한 사실주의 화가들이 캔버스에 담아내고자 한 것은 결국 존재론적 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갈망이었을 것입니다.

물리학에서는 물질을 진동하고 있는 입자로 설명합니다. 물체의 움직임, 운동하는 물체에 관한 학문인 물리학은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탄환이 어디로 떨어질지 알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학문이었습니다. 알고 싶은 마음은 모르기 때문이며 모른다는 것은 확신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물리학은 원자 단위에서 입자를 설명할 때 파르르 진동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역학은 운동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학이라는 본질적 속성상 진동하지 않는, 다시 말해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관심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자신이 유도한 파동함수로 진동하는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그가 인류 역사에 남긴 세 가지 업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드린 파동함수이며 나머지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강연과 양자물리학을 조롱하기 위해 고안한 사고실험이었던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이야기는 파동함수인데요. 파동함수는 기본적으로 미분함수입니다.

미분을 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요. 미분이라는 건 어떤 시점에서 바로 다음 시점으로 이어질 때 과연 얼마만큼의 변화량을 예상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해석입니다.

즉 미분함수는 변화량을 미리 알기 위한 시도이며, 미리 알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직전의 현재까지는 몰랐다는 사실을 가정합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때처럼 무엇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불안에 떨게 합니다.

밤하늘을 수놓은 파르르 떨고 있는 별빛을 우리네 인생이 내포한 불안을 비유할 때 활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사고입니다.

결국 진동하는 사물과 파르르 떨고 있는 물체는 불안하다는 방증입니다. 굳건히 서 있는 나무와는 반대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불안을 끌어안고 소화해냄으로써 불안을 불안 그 자체로 인정하는 사람과 불안하지 않은 척하는 사람 중에 과연 누가 진정으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일까요?

난파선에서 탈출한 조난자 중 수몰당하지 않으려고 헤엄치고 있는 사람과 작지만 구명정에 올라탄 사람 중에서 누가 불안을 떨쳐낸 사람입니까?


#인생의 모든 변수를 내재변수와 외생변수로 나누고 외생변수에 대한 통제권이 우리에게 없다면 외생변수는 error term으로 표현할 때 이를 시간에 대해서 미분할 경우 error term은 0으로 수렴한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말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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