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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un 13. 2023

어쩐지 어제 하얀색 셔츠를 다리고 싶더니만(1)

맥주의 위로



"아 진짜 힘들다. 오늘은 집에 가서 맥주 먹고 잘 거야!"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내뱉은 외마디 외침은 말한 장본인인 내가 생각해도 얼토당토않는 말이었다. 집에서 혼자 할 일을 무슨 국가지대사라도 되는 양 비장한 각오로 떠벌리다니, 국사의 수많은 페이지를 장식한 고결한 정신의 위인들이 들었다면 벌떡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21세기에선 "젊은이, 자네 지금 뭐라고 했는가?"라는 말 대신에 "오늘 저랑 한잔 하실래요?"라는 수줍은 한 마디가 들려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보니 재현이가 씩 웃으면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 나 오늘 너무 힘들어서 혼자 집에서 먹고 잘래."

"아, 네. 그럼 다음에 하시죠."

재현이의 제안을 뿌리치는 건 쉬웠지만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재현이는 나와 같은 서자 출신으로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직원 중 나와 가장 나이차가 적은 직원이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해도 한사코 선배님을 그렇게 부를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재현이는 2년 전부터 내게 "차장님, 둘이서 한잔 하시죠."라는 말을 해놓고선 지킨 적이 없다. 둘이서 나눌 이야기가 산적하게 쌓여 있다면서도 막상 둘이 날을 잡고 그날만을 기다리면 이상하게도 꼬이고 꼬여 막상 약속날짜에는 얼굴을 마주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짓곤 했다. 이때 매우 자연스럽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 교환이라는 암묵적인 합의를 거처 다음 달로 미루어 온 게 벌써 이 년째다.

지난달만 해도 날을 잡아 놓았더니 각자의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던 업무의 무게가 깃털 같은 두 남자의 약속을 게 눈 감추듯 사라지게 만들었다. 생계를 잇는 직장의 야속함 말고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재현이와의 독대를 이행하고 말겠다는 의지는 어김없이 봄볕에 눈 녹듯이 약해지고 말았다.

우리의 이러한 약속의 불이행은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의례적으로 제안하는 식사 약속과는 성질이 달랐다. 중간 관리자로서의 의기투합 말고도 서자로 전락하기 전 우리가 누려왔던 과거의 영광을 향한 그리움을 나누기도 하며 미래에 있을지 모를 영전의 달콤한 열매를 함께하자는 비밀스러운 서약까지도 포함된 밀담이자 밀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항상 옆자리에 붙어 앉아 있으니 언제라도 밀회를 도모할 수 있다는 마음의 안심이 언제나 급한 일에 치여 까치와 까마귀의 도움이 없이는 만날 수 없는 밀약이 되어버렸다. 재현이의 제안을 눈으로 주고받은 오늘도 서로의 시선 속에는 그러한 믿음과 안심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시콜콜한 감상에 빠져 있는데 느닷없이 박 부장님께서 근처로 오시더니 "10분 뒤에 출발하자."라고 말씀하시자 "네, 준비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러고선 "재현아, 너는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그쪽으로 바로 올 거지?"라고 물었고 재현이는 "네, 차장님. 먼저 가 계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원래의 계획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박 과장과 1층 팀장에게 출발시간을 5시 반으로 확정시켜 놓고선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며 퇴근 준비를 했다. 사실 퇴근이 아니라 사무실을 떠나 장례식장에 가는 업무의 연장이었다.

오늘 새벽에 울린 알림 메시지에는 비보가 전해져 왔었다. "OOO 회장님 별세"라는 제목과 함께 장례식장, 발인일자 등이 빼곡히 적힌 긴 메시지가 수신되었다.

OOO 회장님은 우리 사무실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고객이어서 회사 내부적으로 점하고 있는 그분의 위상은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 해돌에 있는 사람들의 순자산을 모두 합산한다고 해도 OOO 회장님보다 많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직접 만난 사람 중에서 조 단위의 순자산을 가진 사람은 그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년 전 그분의 생일날 처음 그분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분의 시선을 마주 보면서 나눈 이야기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그토록 거대한 부를 이룬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한 소회를 듣고 있던 그 짧은 시간, 그분이 내게 권해준 상당 금액의 술 한잔이 선사했던 선명한 인상과 그 감명은 잊을 수 없는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그분을 만난 뒤로 나는 나보다 연봉이 많거나 순자산이 많은 사람을 대할 때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 회장님에게서 받은 감명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무리 이곳이든 어디서든지 간에 자신의 재산이 많다고 자랑하는 작자치고 그 말의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었다. 수조 원의 순자산을 가진 그 회장님을 이곳에 모셔온들 그분이 과연 수조 원의 순자산이라는 거대한 부를 이룩한 사람인지를 알아낼 방법이 과연 있을까.

웬만해선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부는 절대적인 과시를 하지 않는 법이었다. 과시를 하지 않더라도 그를 둘러싼 세계가 이미 그 부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분의 사모님께서 사무실을 방문한다는 긴급한 소식을 받고 사무실 앞에서부터 사모님을 모시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눈썰미가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던 나조차도 그 사모님이 내 곁을 홀연히 지나쳤을 때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그 뒤로 나는 어디서든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인간 치고 실속 있는 인간은 없을 거라는 데에 방점을 찍곤 했다. 수조 원을 가진 사람조차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인 것을, 기껏해야 그분 재산의 1%도 가지지 못한 미천한 인간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말로 하는 것이 재산을 자랑한다는 것이 과연 기가 차겠냐는 식이었다.

어디선가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인간이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꼭 콧방귀를 뀌곤 했다. 마치 지고선을 알게 된 사람이 위선자의 행태를 마주 보고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가처분소득의 숫자가 겨우 9자리도 넘기지 못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부를 자랑하며 이성에게 손짓을 할 때 나는 언제나 이 회장님을 떠올렸다. 어차피 이 세상을 떠날 때 모두 놓고 가는 것들을 마치 자신을 대변하는 것처럼 떠벌리다니. 그토록 어리석은 일들이 과연 또 있을까.

무지의 지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처럼 무지한 인간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싶었다. 이내 체념하고 말았다. 그토록 나는 유약하고 나약한 필멸의 존재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그림자 밖을 벗어날 수 없다.

부고 소식을 접하면서 속으로 '어쩐지 어제 그렇게 하얀색 셔츠를 다리고 싶더라니만.'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려놓은 하얀색 셔츠와 슬랙스로 대충 단정해 보이도록 입고선 집을 나섰다.

출근해서 보니 재현이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감색 면바지를 입고 왔다. 내 옷차림을 보더니 재현이는 "차장님, 저는 오늘 일을 일찍 마감하고 집에 가서 정장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서둘러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하마터면 다섯 명이 탈 뻔한 승용차에 박 부장님, 김팀장님, 박 과장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편히 앉아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며 서울ㅇㅅ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차를 타자마자 조문 방식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이팀장, 나는 묵례만 할 건데 넌 어떻게 할래?"

"아, 네. 저도 묵례만 할 거예요."

그랬더니 김팀장님과 박 과장도 묵례로 통일하기로 뜻을 맞췄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고인에게 드리는 인사야 묵례로 한다 해도 상주와의 인사는 과연 절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묵례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달랐다.

"이팀장, 박팀장에게 전화해서 분위기가 어떤지 좀 물어봐."

점심시간부터 장례식장에 가 있던 박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분위기를 물어보니 상주와의 인사는 묵례로 해달라는 상주의 요청이 있다고 전해주었다. 내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차 안에 있는 분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박팀장은 점심때부터 가 있던 거야? 계속 인사하느라 서 있어서 힘들겠는데?"라고 박 부장님께서 왜소한 체격의 박팀장님을 은근히 걱정하셨다.

박팀장님은 본부장님과 함께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어려운 윗분들을 모시고 있었다. 그 윗분들이 남자여서 다행이었다. 만약 다 여자분들이었다면 아마 그분들을 모셔야 할 사람은 박팀장님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아, 아까 가서 보니깐 그냥 1층 로비에 다들 앉아 계시던데요?"

"엥? 그러면 이팀장은 또 가는 거야?"

"아, 네. 아깐 본부장님 서명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서 택시 타고 다녀왔어요."

그런데 사실 나는 본부장님의 서명을 받긴 받았지만 여권에 표시된 본부장님의 영문 이름과 서류상의 영문명이 서로 불일치하다는 걸 서울ㅇㅅ병원에서 본부장님이 서류에 서명을 마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여권상 영문명과 서류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했을 때 분명 일치했던 것이 서울ㅇㅅ병원에서는 달랐다.

아침부터 대형 로펌 변호사와 통화하느라 넋이 빠지고 혼이 나간 터라 아마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SOON과 SUN을 머릿속에서 소리 나는 대로 그대로 맞다고 생각했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본부장님은 그 사실에 절망한 나를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때 나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정신이 없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죄송합니다."를 연달아 소리 내어 말씀드리고선 고개를 숙이고 다시 사무실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이런 실수를 해본 게 처음이었던 터라 스스로 믿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나도 늙어가나 보다는 생각에 가슴속에 서글픈 쓰라림이 잔잔한 파문처럼 널리 퍼졌다.

그래서 나는 그 서류뭉치들을 들고 다시 본부장님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라도 장례식장에 가야만 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차 안에 있던 직원들에게 설명하면서 몸 밖으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건 빨리 잊어버려."라고 박 부장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네. 저는 빨리 잊지만, 윗분들은 잊지 않으시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괜찮습니다."라고 애써 말하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서울ㅇㅅ병원에 도착했는데 대낮처럼 병원 내 도로에 수많은 차량들이 엉켜 있어서 매우 번잡했다. 병원을 한 바퀴 돈 다음에야 주차장의 위치를 파악한 박 부장님께서는 공영주차장에 겨우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로비로 걸어가는 도중 박 과장이 "장례식장 들렸다가 간다고 했더니 집에서 어머니께서 굵은소금을 준비하고 계시겠대요."라는 말로 전통신앙에 근거한 토속적 믿음을 내비쳤다. 박 과장의 말에 김팀장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남편이 굵은소금을 사놓을 거라는데, 엘팀장님 우리도 여기서 굵은소금을 하나 살까요?"라고 나를 보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물어보았다.

나도 김팀장님과 똑같이 멋쩍은 미소를 눈가에 띠고 다소 수줍어하는 말투로 "저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괜찮아요."라고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화답했다. 김팀장님은 갑자기 세게 내려칠 듯한 기세로 주먹을 치켜들더니만 "그런 차원이면 모태신앙인 나도 그렇단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내 어깨를 큼지막한 주먹으로 툭하고 살짝 내려쳤다.

김팀장과 나는 언제나 이렇게 장난을 치곤 했다. 아마도 장례식장에 무사히 도착해 안도한 나머지 개구쟁이 심보가 살아난 것인지 김팀장님께 장난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나의 너스레를 알아챈 김팀장님은 얄미운 나를 향해 가벼운 펀치를 날림으로써 처음 겪는 생소한 상황에 처한 동지애를 표현했다. 그렇게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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