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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ul 30. 2023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2

얼마 전 자네와 함께 길을 걷다가 나눈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이토록 늦은 밤을 깨운 채 펜을 들게 되었다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사라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여전히 깊은 밤에 파묻히곤 한다네.



한적한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자네는 뜬금없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던 걸 기억하는가? 



"도대체 자네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동굴에 칩거하는 토인처럼 그토록 혼자 지내는가?"



평소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던 자네가 그때만큼 단호한 말투로 나를 몰아세운 적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모르겠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냥 즐거웠었다네.



그래서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조용히 길을 걷고만 있었던 거니, 그 모습을 보고 마치 내가 자네를 회피했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네. 오랜만에 보여준 자네의 진실된 모습 덕분에 나는 머릿속으로 추억여행을 떠난 셈이었으니 부디 나의 부덕함을 용서해 주게.



아무리 기다렸어도 자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던 내게 자네는 다시 또 질문을 던졌네. 자신을 내던지기 위해서 자네는 상대에게 어떤 점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냐고 재차 묻지 않았던가.



역시 자네는 같은 질문을 다르게 할 줄 아는 재치가 넘치는 벗이라는 점에 감사하다네. 자네의 그러한 재기 발랄함은 우리 우정의 연료와 같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망설이지만, 자신을 바치는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쉽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마련 아닌가? 자네가 질문을 다시 했을 때 그제야 나는 현실로 돌아와 나를 뻔히 보고 있던 초롱초롱 빛나던 자네의 두 눈을 마주 볼 수 있었다네.



자네의 질문을 쉽게 풀어쓰자면 결국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이성을 볼 때 무엇을 보는지 물어본 것 아닌가?



사람인 이상 겉모습을 아예 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얘기는 식은 맥주를 먹는 것처럼 심심하지 않은가?



이런 시답잖은 얘기는 모두 한데 모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조금은 관념적인 얘기를 해도 되지 않겠는가? 자네와 나 사이라면 그쯤은 해도 되지 않겠냐는 말일세.



우리는 현재만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현재는 촘촘히 쌓인 과거의 누적된 형상이지 않은가? 또한 우리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현재의 선택이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어서 신중하려고 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불완전한 존재는 자신보다 더 불완전한 것을 잉태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런 우리가 과연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일세.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체념하고 있을 수만 있을까?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존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거라면, 결정을 옳게 만드는 미래의 과정만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누적된 과거의 현상은 현재로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현재는 선택이라는 걸 통해 미래에 연결되어 있다네. 



이때에 우리는 실존을 마주할 때 과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어 있네.



이처럼 나는 스스로를 검증하고 검토한 끝에 나는 자네의 의구심을 이런 대답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었네.



"나는 그녀의 삶에 반영되어 미래의 그녀와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네."



나의 대답을 듣고 자네는 아무 말도 없었네.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네.



한참을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자네는 다시 내게 이렇게 물었네.



"그러면 자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자네의 첫 질문에 답변할 때 우리 대화의 물꼬는 여기에 이를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네. 그래서 이 점에 관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얘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네.



"자네, 존재와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 동의하나? 동의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떤가? 우리의 존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자 삶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삶이라는 것을 생득적으로 부여받았네. 그래서 우리는 우리답게 완성해 나가라는 주문을 받은 셈이네. 존재가 삶이고 삶은 자신을 자신답게 완성해 가는 과정인 것인 데다가 존재와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답게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가도록 전념하는 것이지 않은가?"



내 얘기에 놀란 자네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네. 아마 자네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었던 모양일세.



"자네는 도대체 그런 생각을 언제부터 품고 있었던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던 것인가? 말해주게나. 부디 이 친구의 청을 거절하지 말게나." 이런 식으로 얘기한 걸 보면 내가 자네를 감동시킨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네.



"우리는 그렇지 않은가? 의심 나는 것, 확신이 가지 않는 것, 우리가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고찰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확신의 요소요소가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구조의 뒷받침을 이루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법일세. 마치 우리가 숨 쉬고 있을 때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않듯이 말일세. 



그런데 우리들은 한 번씩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네. 상실로 인한 상처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네.



사랑 그 자체를 의심했다는 뜻이 아니라네. 단지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 바로 그 진정한 의미와 양태에 대해 명확해지고 싶었던 것뿐일세.



그래서 많은 생각을 읽고 들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그들이 내 손에 쥐어진 사랑과 삶의 관념에 대해서 검증하곤 했네. 이러한 지적인 훈련이 어떻게 사랑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네.



다만 행동은 쉽고 생각이 어렵다고 한 괴테의 말을 기억해 보게나. 우리의 행동이 패착에 이르렀을 때 과연 우리가 행동만 잘못한 것이냔 말일세.



결국 난 아까 자네에게 말한 사랑에 관한 하나의 관념에 수렴하게 되었던 것일세. 단지 그뿐일세."



나의 답변을 묵묵히 듣고 있던 자네는 고개를 떨구었네. 그리고 굵직한 눈물을 뺨 위로 뚝뚝 흘리고선 내 손을 붙잡았네.



"맞네. 자네의 말이 수백 번 옳다네. 모름지기 삶의 의미를 파악하고 깨달은 사람이라면 사랑에 관해 말할 때 최소한 그 정도는 말해야 하는 법 아닌가?"라고 말해줘 고맙네.



진심으로 고맙네. 나의 진심을 이해하고 손을 잡으며 기꺼이 한 마음이 되어준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낀다면 과연 나는 누구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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