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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pr 24. 2023

디카페인 커피를 위한 변명



언제였을까? 모친께서 카페인에 대한 민감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을 때가. 모친은 커피를 커피만으로 즐기기보다는 커피와 함께 쿠키나 베이커리류의 음식을 곁들이곤 했다.



왜 커피를 커피만으로 즐기지 않냐고 여쭤보면 언제나 대답은 한결같았다. 과자와 함께 커피를 마실 때 커피의 풍미가 더 깊어진다거나 곁들인 음식이 더 맛있어진다는 이유를 들곤 하셨다.



어쩌다 커피만 드셔야 하는 일이 생기면 커피잔만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 위를 못내 아쉬워하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부모님 댁에 가면 언제라도 과자 같은 것들이 식탁이나 소파 주위에 늘 준비되어 있었다.



어린 마르셀이 잠에서 깨어나 응접실로 나갔을 때 할머니께서 홍차에 마들렌을 함께 내어주었던, 그래서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고 홍차를 머금었을 때 입안 가득 펼쳐진 향긋한 향의 향연에 이끌려 어디론가 휩쓸려 갔던 그 어린 마르셀로 동화되기가 매우 수월했다.



모친께선 커피를 드시기 위해 빵을 드시는 게 아니라 빵을 더 맛있게 드시기 위해 커피를 곁들였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 취향은 커피를 다양한 다과와 함께 즐기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특별한 소일거리까지는 아닐지 모른다.



다만 나의 모친께서는 여기에 더해 한 가지를 더 원하곤 하셨었다. 커피를 즐기는 시간에 있어서 보다 더 자유롭기를 원하셨을 뿐.



그러한 모친을 위해 미국의 대형창고 매장이 한국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구매목록 중에는 반드시 네슬레의 디카페인 분말커피가 포함되어 있었다. 네슬레 디카페인 분말커피는 초록색 바탕 위에 하얀 글씨로 선명하게 Decaffein이라고 쓰여 있었고, 콜라병을 연상하게 만들 정도로 아슬아슬한 곡선으로 떨어지는 옆구리가 인상적이었던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었다.



이 분말커피는 동결건조방식의 특수한 공법으로 제조되었었는데, 이 커피를 한밤중에 드시더라도 모친께서는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소시민이었던 우리 가족들에게는 모친의 숙면이 당시엔 걱정거리 중 하나였기에 네슬레 디카페인 분말커피의 발견이야말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견될 정도로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미국 대형창고형 매장에서도 이 제품이 입고되지 않기 시작했다. IMF 차관을 받았던 외환위기 전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커피 원두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과정에 필요한 화학적 공법이 그다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에 의해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전언이 들려왔다.



빈속에 마시는 커피도 위장벽을 자극해 건강에 좋지 않다는데, 화학적 과정이 필요한 커피가 제아무리 각성효과를 주는 정신물질이 제거되었다고 하더라도 건강에 유익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모친께서는 세월이 흘러 카페인 민감도가 더 높아졌다. 다시 말해 몸이 약해졌다는 뜻이었다.



그런 모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끊지 않으셨다. 대신에 어차피 숙면에 들기 어렵다면서 잠을 포기하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잠을 아예 주무시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잠을 자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정도였다. 불면증에 시달리시긴 했지만 정신적으로 고통받지 않기 위한 모친 나름대로의 해결책이었으니 기이한 처방이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당사자가 괴롭지 않다는데 굳이 주변에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으니.



그러다가 최근 미국의 유명 커피체인점에서 디카페인 원두를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커피맛도 일반 커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가 카페인 함유량이 거의 0%에 이른다면서 곱절의 크기로 커진 구전효과와 함께 디카페인 원두 출시 소식이 내게도 전해졌다.



평소에 나는 디카페인 커피를 즐겨본 적이 많지 않다. 금요일 밤과 같이 커피를 즐겨야 하는 때라도 부득이한 사정이 없다면 그저 일반 커피를 선택하곤 했다.



그런데 나도 어느 순간부터 모친의 취향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필라테스 수업에 들어가기 전 허기를 간단히 달래기 위해 빵을 곁들이곤 하는데, 이때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커피는 어두운 밤의 무게가 부담스럽고, 주스 종류로는 베이커리와 그다지 궁합이 좋지 않다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뇌리 속에 번득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디카페인 원두였다. 빵에 곁들인 디카페인 커피는 버터의 풍미를 더욱 풍부하게 느껴지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친구였다.



이것뿐이 아니었다. 설탕의 당분이 커피의 쓴맛을 만났을 때 마치 어둠 속에서 여명이 들이치는 것처럼 그 단맛은 더욱 확고해지고 분명해졌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달콤함의 정수를 씁쓸함에서 끌어올리는 일은 단지 식탁 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삶의 의미도 그러하지 않던가? 삶뿐이던가? 자연의 오묘함도 음양의 조화 속에서 비로소 온전해진다.



한때 적도 근처의 열대지방에서 겨울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싫어하던 나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하나의 색다른 체험이자 일종의 탈출구로 여겼었다.



겨울을 피할 수 있다니, 이러한 경험이 과연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이겠냐며 은근한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몰랐지만 우리의 몸은 겨울나기에 익숙해져 있던 모양이었다. 마치 커피의 카페인처럼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선 겨울이 반드시 필요한 계절이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한국에 돌아왔을 때 몸 상태는 평소와 매우 달라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카페인이 부족한 금단현상을 느끼는 것처럼 몸에서 기운이 솟질 않았다.



호텔 피트니스센터에 십 킬로미터 정도를 하루 걸러 하루씩 러닝을 했을 정도로 컨디션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도, 겨울을 생략한 신체와 정신은 어딘지 모르게 중심을 고정시키는 쐐기가 빠져버린 것처럼 헐거웠다. 그리고 감성적으로도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한 것처럼 허탈했다. 마치 내 인생에서 겪어야 할 100번의 겨울이라는 보물상자 중 누군가가 손을 뻗어 하나를 빼앗아 간 것 같았다.



혹독한 추위로 어깨를 움츠리고 다녀야만 했던 그 겨울, 싫어했던 그 겨울이 사라졌던 몇 년 전의 그날들은 잊히지가 않는다. 강탈당한 듯한 그 계절이 오히려 박탈감과 무기력감을 내게 선사했었으니까.



햇빛이 물속으로 진입할 때 굴절되는 원리를 두 가지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과관계로 바라보면 그저 밀도가 다른 물체에 진입하면서 굴절률이 달라졌다면서 원인과 결과를 구분 지을 수 있다.



반면에 목적론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경우, 햇빛은 수면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이 나아가야 할 경로의 최단거리를 알고 있었고 그 최단거리를 달성하기 위해 굴절될 수밖에 없었던 목적이 보이게 된다. 목적론적 사고방식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동일선상에서 연동되는 묘한 경험에 빠져들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디카페인 커피를 바라볼 때에도 목적론적 관점을 견지한다면 우리는 어떨까? 각성효과가 없기 때문에 감수할 만한 위험도 사라지지만,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 커피와 어울리는 간식들의 향연이 그윽한 향기와 함께 어우러질 때 삶의 풍요는 분명 더 풍성해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틀림없이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필요치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빵을 더 깊은 풍미로 즐기기 위한 친구로서의 커피를 원했을 뿐이니깐.


19세기엔 필요가 있는 곳에 의무가 있었다. 20세기부턴 필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인과관계에 익숙해져 있어서 삶을 바라볼 때 단면으로 잘라 분석하고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목적론적 관점으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면 시간이라는 건 단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경로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은 자신 안에 모든 것을 품어야 풍요로워진다고 플로베르가 말했다. 불완전한 인간이 진리 추구를 믿는다면, 오류를 인정하는 것도 게임의 일부가 된다.


(추신) 어젯밤 산책길에 동행해 준 아메리카노 한 잔이 선사한 불면의 밤 덕분에 떠올린 디카페인 커피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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