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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an 26. 2024

친숙한 표현

시내



얼마 전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새로 전입한 부서에 계시던 부장님은 17년 전 입사 때부터 인연을 맺은 분으로, 한 팀에서 책임자와 사원으로 긴 세월을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그렇게 막연한 사이인 부장님께서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듯이 어느새 정년에 이르러 일선에서 물러나시게 되었다. 1월 말일자로 퇴직이 예정되어 있었고 종종 사무실에 나오셔서 자리도 정리하시고 본인 손으로 마무리 지을 뻔했던 업무에 대해 마지막 검토를 하시곤 했다.

막역한 사이인 만큼 길에서나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인사를 드리고 곧잘 안부를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그분이 유독 쓰시는 표현 중에 정말 친숙한 표현이 있었다.

그 표현은 내 기억으로 7살 때부터 익히 들어왔었던 터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입에도 습관처럼 붙어 있었던 그런 한 단어였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어쩐 일이세요, 이렇게 일찍?"

"응, OO아. 오늘 시내에서 약속이 있어서."

"아, 이 추운 날에요?"

"그러게 말이야."

그분이 "시내"에서 약속이 있다고 하셨을 때 내 마음은 어느덧 먼 괴거로 돌아가 한 장의 사진과 같은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마음이 머무는 그곳에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기억, 그 시간이 자아낸 감정의 은은한 향수가 배어 있는 손수건이 내 마음을 훔치는 것만 같다.

십 수년 전에 어떤 이에게 "시내"에 좀 다녀오자고 말했었다. 내 말을 듣고선 대뜸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시내라고? 서울 살면서 어떻게 서울 시내로 갈 수가 있어?"라는 말로 응수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특히 그는 전라남도의 바다에 맞닿아 산수가 좋은 지방이 고향이었던 터라 서울 "시내"에 대한 경험은커녕 관념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에게 시내라는 관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도심과 부도심이라는 한국지리에서의 개념을 끌어왔었다. 그 뒤로 나는 "시내"라는 말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내"에 다녀오곤 했다. 시내라는 관념은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하나의 랜드마크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런 나의 시내라는 관념은 오로지 우리 가족만의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지리 선생님께서 도심과 부도심을 설명할 때 도심을 일명 시내라고 부르는 그곳이라고 덧붙이곤 하셨기 때문에 나는 시내라는 관념을 꽤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지명 혹은 장소에 대한 명명 중에 내게는 아직까지 수수께끼처럼 남은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신"반포와 "구"반포라는 지명이다.

어릴 때 교회에 가면서 버스에서 노선도를 봤는데 반포라는 동네가 신과 구로 나뉜 것을 보고서 어머니께 그 이유를 물어봤었다. 어머니께서는 신반포는 반포동 증에서도 개발이 늦게 시작된 동네라서 새로울 신 자를 붙여 구분했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그럴듯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마 그 장면이 뇌리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던 것 같다.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동안 버스노선과 똑같이 신반포역과 구반포역이 안내방송을 타고 나올 때마다 교회에 가던 버스에서의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데 2023년에는 개발 환경이라든가 순서가 과거와 사뭇 다르다. 고속터미널 건너편은 신반포로 보지 않으니 신반포는 래미안 원베일리가 들어선 이후로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반대로 구반포는 주공 1단지를 허물고 허허벌판이 되어 앞으로 꽤 큰 재개발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보자면 구반포가 신반포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만약 나의 아이가 어릴 때의 나처럼 왜 신반포와 구반포인지를 물어보게 된다면 나의 대답은 단순할 수가 없어졌다. 어릴 때 똑같이 물어봤던 나의 경험을 덧붙이는 장황한 설명이 이어질 것만 같다.

세상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단순한 문장 하나가 노스탤지어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반동으로 몰고 온다.

아련했던 그때 그 시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들.
마음속으로만 돌려 볼 수 있는 그 마음들.

시간은 친숙한 완화제이기도 하지만 시간에 풍화된 추억들이라는 눈밭에 남긴 발자국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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