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말을 잃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온전하게 전하고 싶었다.
글로는 닿지 못했다.
소녀의 감정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더 깊고, 더 넓었다.
손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손짓, 부드러운 떨림,
마치 공기를 쓰다듬듯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손끝의 언어는 너무 미세해서,
사람들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소녀는 온몸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깨로 떨림을 표현하고,
허리로 아픔을 휘게 하고,
하늘을 향한 팔로 기쁨을 펼쳤으며,
발끝으로 슬픔을 내려찍었다.
소녀의 몸짓은 어느새 춤이 되었다.
사람들은 감탄했고, 눈물을 흘렸다.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예술이 되었고,
박수는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여전히, 전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무언가가 빠져있는 공허가 항상 남아있었다.
공연이 끝난 어느 날,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모두 떠난 후.
한 아이가 소녀에게 다가왔다.
주저주저하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누나, 어디 아파?
얼굴이 너무... 아야해 보여.”
그 순간, 소녀는 멈춰 섰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
자신의 표정을 떠올렸다.
아무도 그 얼굴을 말해준 적 없었다.
춤을 본 사람들은 기술을 말했고, 감정을 추측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그녀의 얼굴에 담긴 진짜 마음을 읽은 적은 없었다.
그 아이는 보았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
몸짓으로도 다 전할 수 없던 것.
그날 이후,
소녀는 더 이상 춤만 추지 않았다.
거울 앞에 앉아,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눈물짓는 얼굴,
익숙하지 않았던 자신의 표정을
하나씩 천천히 마주하기 시작했다.
입꼬리의 방향,
눈썹의 떨림,
광대의 긴장감.
그 모든 것이
말이었다.
소녀는 입을 열지 않고 말했다.
눈으로, 숨결로, 뺨으로.
그녀는 온몸으로 이야기를 꿰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멋지다'라고만 말하지 않았다.
“이해돼.”
“나도 그런 감정 느껴봤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
그녀는 이제,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 닿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말했다.
입이 아닌, 마음으로.
소리가 아닌, 표정으로.
무대가 아닌, 일상에서.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비로소, 진짜로.
작은 동화 3연작, ‘듣다, 보다, 말하다’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듣거나 보거나 말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고, 세상과 관계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듣기를 통해 귀 기울이고, 보기를 통해 이해하며, 말하기를 통해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 중 하나를 잃거나, 스스로 닫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이, ‘듣다’, ‘보다’, ‘말하다’라는 세 편의 작은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작은 동화는 계속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