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함을 느끼다
처음에 그녀는 잘 들었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헤아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듣는다는 건
고분고분해지는 일이 되었다.
누군가의 말은 지침이 되었고,
그 지침은 곧 경계가 되었다.
그녀의 생각은 자취를 감췄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자기 자신을 잃었다.
그녀는 결국, 듣기를 멈췄다.
아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조용했다.
눈물도, 다툼도, 목소리도 없는 평온.
그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묻지 않아도 되었고,
어떤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갈망하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르고,
우주 너머를 자유롭게 떠돌았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인가 모든 풍경이 같은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날이 고요로 채워졌다.
모든 소망이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었다.
외로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세상은 독방과 다를바 없다는 걸...
그때서야,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웃었던 순간,
재잘대는 소리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던 모습.
그녀는 조심스레 귀를 열었다.
세상은 여전히 말이 많았고,
그 말 속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상처들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듣는다는 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도,
모든 걸 잃는 일도 아니라는걸 이제는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따스함이 다가 올 수 있는 커다란 방식중 하나라는 걸...
그녀는 이제 다시 듣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녀의 세상에 누군가의 숨결이 깃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