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하지 않다.
오늘도 고된 하루였다.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뒤,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땄다.
거품이 부드럽게 올라오며 하루의 피로를 잠시 덜어주는 듯했다.
문득, 옆에 놓인 햄스터 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햄스터는 쳇바퀴를 쉼 없이 돌고 있었다.
작은 발로 힘겹게 뛰는 모습이 어쩐지 회사원 자신과 겹쳐 보였다.
“너도 나랑 똑같구나. 아무리 열심히 뛰어봐야 결국 제자리잖아.”
그의 시선은 쳇바퀴 위에서 계속 달리고 있는 햄스터에게 고정되었다.
“그래도 너는 내가 부럽다. 제자리인 걸 알지도 못하니까 열심히 뛸 수 있겠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쳇바퀴 같은 삶이라도 햄스터처럼 행복하지 않을까?
아무리 열심히 뛰어봐야 결국 제자리 인걸 아니까 의욕이 안생겨.
결국 집, 회사, 집, 회사... 그 반복 뿐이야.”
그 순간, 쳇바퀴 속 햄스터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냐.”
깜짝 놀라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햄스터는 여유롭게 쳇바퀴를 나와 앞발로 털을 정리하며 말했다.
“나 또한 쳇바퀴를 돌려봐야 제자리 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입을 떡 벌린 채 햄스터를 쳐다봤다.
“아니, 잠깐만. 햄스터가 지금 말을 하고 있어?”
햄스터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내가 말을 한다고 놀랄 필요 없어. 말보다 중요한 건 내가 왜 쳇바퀴를 돌리는지야.”
그는 얼떨떨한 얼굴로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럼 왜 돌리는 건데? 아무리 봐도 무의미해 보이는데.”
햄스터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건강을 위해서야. 쳇바퀴는 내가 가진 환경 안에서 나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한 수단이지.
비록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내 몸을 단련하고 유지할 수 있어.”
“그래도... 쳇바퀴를 굴리는 건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이는데?”
그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햄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네겐 그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난 언젠가 예기치 않은 변화가 찾아왔을 때,
나를 지탱할 힘을 만들어 두는 거야.”
회사원은 그 말을 듣고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예기치 못한 변화?, 지탱할 힘?”
햄스터는 조용히 쳇바퀴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잖아?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때 내가 견뎌낼 힘조차 없을 거야.
그래서 돌려. 무의미해 보여도, 지금의 반복이 나를 준비시키는 과정이거든.”
“맞아. 나도 매일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며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고 느꼈지.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배우고, 일하고 있어.
이 또한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이 아닐까?”
햄스터는 다시 쳇바퀴 위로 올라가 작은 발로 쳇바퀴를 굴리며 말했다.
“반복이 무의미하진 않아. 그것이 널 유지하고 미래를 대비하게 만든다면 말이지.”
그는 한 모금의 술을 마시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와 자신이 닮았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조금 달리 보였다.
반복 속에서도 그 또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쳇바퀴가 멈출 때 나를 지탱할 힘이 필요하겠지.”
햄스터의 쳇바퀴 소리가 그의 생각과 함께 조용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