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 한구석의 방.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잊고 있던 그 공간에,
나는 오늘 문득 서 있다.
그 방에는 그녀가 있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녀.
그 방에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힘들어서, 잔혹한 현실이 싫어서, 어쩔 수 없어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었다.
아니, 헤어져야만 했다.
모든 것을 납득한 이별이었다고,
나는 믿었다.
하지만 문득 열린 그 방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내가 굳게 잠가버렸다고 생각했던,
존재조차 부정했던 그 방은,
왜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걸까?
왜 아직도 그녀의 잔재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걸까?
“이미 끝난 일이야.”
“다 잊었어.”
수없이 되뇌며 믿으려 했지만,
그 방의 문을 여는 순간,
그 모든 말은 조각처럼 부서졌다.
닫힌 문 뒤로 밀어놓았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결심했다.
"이 방을 부수자."
여기 남아 있는 한 톨의 잔해마저 치워버리자.
더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도록,
그 방 자체를 없애버리자고.
문을 열고, 부수고, 태우고,
아무 흔적도 남지 않게.
나는 그렇게 이 방을 없애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손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럴까?
모든 게 허상일 뿐인데,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내 삶에서 사라졌고,
이 방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일 뿐인데,
왜 이 찌질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이제 나는 방 앞에서 서성일 뿐이다.
부수지도, 치우지도 못한 채,
그저 문턱 위에 웅크린 나를 바라보며,
‘내가 잊지 못한 건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구나'는 생각에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