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9년간 멀쩡히 다닌 대기업 퇴사하고 남편 MBA 따라 2년간 텍사스 살이 준비하는 30대 MZ백수 장엠디입니다. (늘 장황한 자기소개네요) 요즘 제 삶에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건 요즘 바로 이 브런치인데요,
퇴사하고 한껏 게을러진 몸인지라 연재가 귀찮을 때가 한 번씩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매일 볼 것 없는 이 브런치를 믿기지 않게도 몇 천분씩 찾아주고 계시다는 책임감으로 동력을 얻곤 합니다. 더욱더 성실하고 진솔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글에 앞서, 당연히 협찬이나 광고가 있을리 만무한 사람으로써 진솔한 이야기를 위해 학원명은 모두 실명으로 공개합니다.
19위..! 제 보잘것없는 브런치를 찾아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출국 날짜를 정했습니다. (짝짝짝)7월 말에 남편은 TEXAS로 먼저 출국하고 저는 9월 초에 한국 생활을 정리한 뒤 뒤따라가기로 했는데요. 미국 생활을 앞두고 저에게 가장 큰 압박으로 다가온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어입니다. 끈질기게도 제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 녀석, 영어... 그래서 오늘은 상세히 저의 고군분투 영어 공부기를 담아보고자 합니다.
평생 올 해 전까지 미국은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영어라고는 수능영어와 취업할 때 토익공부가 잠깐이었습니다. 취업하고 9년간 회사일 하면서는 거의 영어를 쓸 일도 없었고요. 그런데 그런 제가, 스무살 도 아니고 그것도 삼십대에 갑자기 미국을 나가서 2년이나 살아야한다니요?? 늘 업무를 영어로 보고, 영어가 몹시 능숙한 남편이야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저는 눈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TEXAS AUSTIN 시내 야경. 저, 적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영어가 너무 싫었습니다. 너무 못했냐고요? 모르는 사람은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어요. 왜냐? 실은 저는 수능영어 1등급 그리고 토익도 단 한번도 900 아래로 맞아본 적이 없는 성적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배워온 교과과정은 철저히 대입에 맞춰져 있다보니 정작 스피킹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하게 됩니다. 해외에서 살다온 친구, 미국에서 태어난 친구. 본투비 네이티브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던지요. 회회가 잘 안된다는 것을 깨닫자,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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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 저는 "불문학"을 선택했습니다. 원래 꿈이 작가였고 문학소녀였던 저는 전공 덕분에 발자크나 에밀졸라와 같은 프랑스 문인들을 맘껏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은 내내 불어와의 고군분투하는 시간이었고, 그러다보니 영어와는 더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 거기서 저는 또 한번 영어와 부딪힙니다.
프랑스 내 방 기숙사. 신발 신고 들어가는 문화가 낯설었던 대학생 나. 신발 벗어달라고 붙여뒀던 내 방 입구 프랑스 기숙사. 미친듯이 까불거렸던 대학생 나..^^ 이때 평생의 절친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인문학도로써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문학과 역사, 작문과 예술을 사랑한 것에 비해 어학은 너무나도 어려웠어요. 전세계 많은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있었던 수업 첫 날, 레벨테스트에서 저는 문법과 작문은 고득점을 했습니다. 하지만 스피킹은? 처참할 정도였죠. 학점은 정말 노력해도 B B B 더라고요. 영어와 프랑스어,스페인어 등은 뿌리가 거의 비슷하고 어순이 같아 서구권 학생들의 실력은 금방금방 느는 반면 저에게는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어요. 문법이 엉망진창이더라도 많이 말하려는 친구들은 스피킹도 금방 늘고 인싸가 되어갔지만 문법과 작문에 집착하는 저와 같은 유형의 친구들은 수줍고 샤이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때 느꼈지요. 스피킹을 더 공부하자? NO! 영어 너무 싫다..외국계는 피해야지. 영어 안하는 회사 취업해야지..였습니다.
다행히 졸업할 때까지 악으로 깡으로 불어만 열심히 공부한 덕에 프랑스어는 중급레벨이 되어 불어 덕에 패션MD쪽으로 취업을 하게 됩니다. (다시금 영어는 안녕..다시는 보지말자) (근데 결론은 안 쓰니까 이젠 불어도 기억이 안나더라고요 허허.)
처참했던 어학과의 싸움. FRENCH GROUP SPEAKING B, FRENCH 번역 B. (대학성적표) 나는 어문학도가 아니라 인문학도였다. 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영어공부 손 놓은지도 어연 10년. 도대체 영어가 저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을까요? 그것도 결혼까지하고 30대에, 퇴사한 백수가 되어서도 질긴 영어는 절 물고 놔주지를 않았어요. 2년동안 텍사스를 나가라니.. 실은 영어공부를 아예 놨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안됐던 거였어요. 그간 제가 영어회화실력 늘려고 했던 노력들을 열거해볼까요?
[영어회화를 위해 장엠디가 했던 노력들]
1. 미드보기▶ 보다가 미드가 재밌어져서 한글 자막보고 본격적으로 한글로 즐겼음(실패)
2. 영어회화 동아리▶ 연애,친목으로 가입했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파티 분위기로 변질되어 안감.(실패)
3. 전화영어▶ 출석못채우면 월급에서 까이는 제도라 울며 겨자먹기 신청.그러나 야근으로 잦은 결석(실패)
4. 영어유튜브 구독▶ 유튜브만 켜면 현란한 알고리즘이 나를 감싸네..정신차리고 보면 딴 짓 중(실패)
모두 실패, 실패 그리고 실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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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에는 큰 맘먹고 학원을 등록하게 됩니다. 바로 신촌 YBM의 ERIN 기초영어회화라는 수업입니다.(광고가 아닌 저의 실제 수강후기입니다.)
사실 저는 사교육의 딸입니다. 적어도 저를 초등학생까지 키워낸 것은 사교육입니다. 문자 그대로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때 10년 넘게 재수종합학원을 운영하셨었거든요. 부모님께서 사교육으로 열심히 버신 돈으로 저는 먹고, 자고 입을 수 있었답니다. 자식을 셋이나 낳았을 시점 결국 엄마가 전업주부가 되시면서 아예 학원을 접기 전까지의 일입니다. (벌써 옛날 이야기네요.) 가난하지만 열정과 꿈은 가득했던 석사 부부였던 저희 부모님은 학업 중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졸업을 하신 뒤 영혼까지 끌어모은 자금으로 말도 안되는 헐값에 나온 급 매물인 서울 80평대 학원을 인수하시며 덜컥 사교육에 뛰어드셨지요. 이과입시수리를 담당하시는 수학원장 엄마와 성문영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시던 영어원장 아빠, 그리고 학원에 계시던 국어와 탐구쌤들. 맞벌이라 아이를 맡기기 어려우셨던 부모님 탓에 저는 3-4살부터 학원을 뛰노는 정말 "사교육의 딸"이었어요. A4 이면지들에 빨간 색연필로 채점하는 장난을 치면서 놀던 게 제 유년기의 첫 기억일 정도이니까요. 원장쌤 딸이라고 귀여워해주시던 고3 언니 오빠들이랑 놀이동산도 놀러갔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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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다보니 학원이라는 공간이 저에게 묘하게도 거부감으로 남게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린시절 뛰놀던 놀이터에 어느순간 훌쩍 커버려 돈을 내고 입장하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에게 학원은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놀러 가는 곳이었고, 부모님께는 치열한 생존의 장이었습니다. 같이 일하시던 선생님들이 독립하셔서 옆에 학원을 오픈하시기도 하고 학부모에게 전화가 와서 알고보니 학생이 학원 등록했다고 뻥치고 학원비를 삥땅치기도 하고.. 하여간 별 일이 다 벌어지던 곳이 그 시절 학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학원에 굳이 저를 맡기고 싶지 않으셨던 아빠한테 방학 동안 성문영어를 배우면서 영어가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은 자녀를 가르치는 건 정말 다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경험들로 학원은 어느순간 저에게 빠른 성취를 위해 마지못해 금전을 지불하고 단기간 다니는 곳. 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영어회화만큼은 학원을 다니고 싶지 않기도 했었고요. 회화는 즐거워야 돼, 학원은 즐겁지 않아,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번이 저의 첫번째 영어회화 수업은 아닙니다. 인강이나 다른 유명하다는 현장 강의들도 종종 들었었지만 재수강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꼭 이 경험을 브런치에 남겨야지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회화에 유용하니까 무조건 구문을 외워주세요" 라던지, "영어구문 300제"랄지, 그런 암기식 수업이 아닌 회화 수업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실은 대학교 어문강의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왕초보수업이지만, 가르쳐주시는 내용이 왕초보는 아니었으니까요" 스킬보다는 맥락을 가르쳐주는 수업이었어요. 해야하니까 외우는 언어가 아니라, 뭐랄까. 선생님의 교수법은 겉핥기가 아니라 뿌리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대학교 어학 전공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었어요. 왜 미국인들이 "이 상황에서 이 말을 사용할까?"맥락위주로 설명해주시니 제가 그 문화권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면서 금세 친숙해지더라고요.
영어회화 첫 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너무 충격받았던 선생님의 말씀:
"영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반대입니다. 무조건 주어 다음에 동사까지는 바로 말씀을 하시는 연습을 하셔야해요.여러분이 I..까지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I do, I stay 동사까지만 얘기한다면 상대방은 여러분을 기다려 줄 겁니다."
제가 영어 회회가 안되던 근본적인 문제가 저거였던 것 같습니다. 영어와 한글이 어순이 다르다는건, 그만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는거라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완전히 마인드셋부터 바꿔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나는 사과를 먹었다" 라고 한글로 말할 때는 사과를 먼저 떠올리지만, 영어로 회화를 할때에는 먹었다 라는 걸 먼저 말해야하니 늘 멈칫거리다가 웅얼웅얼 거렸던 거였어요.
실제로 집을 구하러 이번에 texas에 나갔을 때, realtor에게 수줍지만 배웠던 영어회화들로 어느정도 적용을 해보았습니다. 근데 신기하게 이게 되더라고요. 문법은 엉망진창이고, 단어만 내뱉는 수준이지만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라는 걸요. 정말로 생각나는 동사까지만 말을 뱉고나니 그들도 기다려주더라고요. 숙어나 구문까지도 외울 필요가 없이 I want. I get.. I need.. 까지만 일단 던져두고 뒤에 단어를 생각하면 상대방은 어느새 제 말을 끝까지 기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공부하다보니 입시영어에서 무조건 외웠던 게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Erin의 영어회화수업에서 가장 크게 얻었던 것은 영어의 skill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의 맥락과 뿌리,즉 context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at, to, in 과 같은 전치사의 숨은 의미를 배우고 문법도 회화에 녹여서 배우니 30평생 처음으로 영어가 즐겁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학원에서 제가 말할 차례가 다가오면 동공지진이 일어나지만,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웃어주시는 러블리한 erin쌤과 다양한 상황의 회화를 하는 영어학원의 공부시간이 참 기다려집니다.
요즘 갑자기 쑥쑥 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영어회화 꿀팁
(Thanks to Erin):
1. 일단 주어 동사부터 냅다 던지기
[문법 다 틀렸는데도 일단 상대방이 진짜 나를 기다려주네요..? 너무 신기했습니다]
[어차피 저는 초보라 머릿속으로 한글 → 영어로 번역하고, 번역이 맞는 문법인지 검토하고, 입 밖으로 발화까지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걸립니다. 제가 i..하고 웅얼거리니까, 원어민은 제가 아무 말도 없는 줄 알고 또는 대화할 의지가 없는 줄 알고 어색하게 늘 자리를 떠났던 거였어요. 이번에는 그냥 주어 동사까지만 뱉은 상태에서 손짓 발짓하니 상대도 다 알아듣고 기다려 주더라고요]
[집 구하면서 쓰레기는 매일 치워주냐고 묻고 싶었는데, 분리수거도 영어로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단 I want to know..까지 동사만 뱉고나니 저를 기다려주더라고요. I want to know.. clean up.. trash.. everyday..와 같은 조각 단어만 듣고도 realtor는 충분히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2. 한마디라도 더 말하기
[의외로 제일 어려운 부분. 이 말이 맞나? 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말하고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웃으면서 그냥 pass해도 상관없다]
3. 못 알아들으면 가만히 고개 끄덕거리지말고 그냥 물어보기
미국에서 재밌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Newyork, Juliana's pizza
뉴욕에서 브루클린 브릿지를 가는 길에 유명한 줄리아나 피자라는 곳에 들렀습니다. 줄이 몹시 길었지요.제 뒷사람이 저를 툭툭 치더니 묻더라고요." 갇음엄?"(정말 이렇게 들렸어요)이게 무슨 나라 말인가요? 제가 너무너무 당황하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그러더라고요.점원이 앞에 있던 사람들 데려갔냐고 물었다고 하는거에요. them이 아니라 'em이라고?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단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뉴욕에서는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됐던건지 그 담부터는 영어하기가 두렵더라고요. 회화 수업을 듣다보니 그런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냥 못들은 척 하지말고 그 사람한테 what 뭐라고?? 라고 다시 물어볼걸. 이라는 생각이요.
결국은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언어는 자신감인 거겠지요. 그래서 스피킹이 어렵나봅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늘기 쉽지 않으니까요. 이제는 해외파나 살다온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포기하지말고 열심히 좀 더 적극적인 마인드로 공부를 해보아야겠습니다. (아직은 많이 두렵지만) 저 할 수 있겠지요? 실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오만 걱정에 휩싸이는 요즘입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