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을 시점, 회사 일에 지친 몸을 누이려는데 남편이 힘겹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네요. 회사 스폰으로 2년간 미국MBA. 누군가는 정말 간절하게 기다렸을 기회일 수도 있지만, 평생 꿈이 "커리어우먼", "관 뚜껑 닫힐 때까지 나는 일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와이프한테 이런 얘기를 꺼내기까지 남편도 마음이 좋지 않았겠지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순간이 오는걸까, 현실을 도피하며 원망하기도 여러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에게 아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찾아오나니.
"나...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에 붙었어요"
캘리포니아? 미국을 한 번도 가 본적은 없었지만, 사시사철 날씨좋고 공기좋고 사람들은 여유가 넘치며 해변이 인접해있다던 그 곳? 심지어 남편이 붙은 학교의 지역은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부촌으로, 몹시 유명한 모 연예인 부부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
한 회사를 9년간 다니며 매너리즘이 왔던 저는, 어느 순간 스스로가 고인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슬슬 걱정이 되던 차였습니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세상을 보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신혼인데 남편이랑 2년이나 떨어져 사는 건 아니지..심지어 캘리포니아라는데. 그래, 나도 가자!
라고 선뜻 퇴사를 결정하게 됩니다.
"세상에, 퇴사하고 캘리포니아? 너무 좋겠다!" "캘리포니아 걸이야?" 캘리포니아라는 단어가 주는 마력이 컸나봅니다. 주위 사람들의 응원도 듬뿍 받으며,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남편은 학교 입학 예치금까지 걸어 두게 됩니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텍사스 대학교에 남편이 덜컥 합격하게 됩니다. 남편이 종사하는 분야는 정유 쪽으로, 정유 분야는 텍사스 지역이 핵심인데다가 MBA 학교 순위도 캘리포니아보다 훨씬 윗 순위에 있었습니다. 날씨가 몹시 덥고, 캘리포니아에 비해 제가 적응하기 쉽지 않을 듯한 텍사스.. 심지어 캘리포니아에는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몹시 친한 저의 대학교 친구들이 있었지만, 텍사스에서는 저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할 게 뻔했습니다. 남편은 텍사스로 가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면서도, 차마 선뜻 먼저 말도 꺼내지 못하더라고요.
성장하는 텍사스를 경험하는 건 장엠디씨한테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회사 선배들도 적극적으로 텍사스행을 지지해주었다)
MBA의 목적이 남편의 커리어와 학업을 위한 것이니만큼,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급하게 목적지를 캘리포니아가 아닌 텍사스로 바꾸게 됩니다. 아아, 캘리포니아의 365일 화창한 날씨와 해변가가 눈에 어른거리지만 저의 몫이 아니었던 거겠지요. 또 영쉘든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며 궁금했던 TEXAS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또한 감사할 따름입니다.
텍사스 출신 사람들은 스스로를 TEXAN이라고 부를 정도로, 텍사스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애정이 뛰어나기로 유명합니다. 브리스킷으로 대표되는 비비큐 사랑, 맥주, 풋볼사랑의 도시 텍사스. 여름은 40도 넘게 습하고 무더운 온난습윤한 날씨에 겨울에는 강추위가 몰아닥치는 정열적인 도시 ,TEXAS.
텍사스 오스틴(Austin)에 내리자마자 본 공항 풍경. jazz의 도시답게 인상적이다.
TEXAS 사람들의 쏘울푸드, 브리스킷 BBQ (Terry Black's Barbecue, TX Austin)
이렇게, 저희는 올 7월 말에 텍사스로 2년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를 겨우 정하고 텍사스 대학교에 다시 입학 등록을 하고나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던 신혼집은 어떻게 처분할 것이며, 미국에서는 어디서 살 것인지? 그리고 그 가운데 남편은 장기 출장길에 쓰러져서 병원 신세를 지고 한국에 돌아오는 등. 좌충우돌의 시간이 지났네요. ( 병원 후기 글은 따로 쓰겠습니다.)
우여곡절들을 겪으면서, 날씨 따위에 투정부리던 제 스스로가 너무나 어리게 느껴지기도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고비들을 잘 넘긴 뒤 저희 부부는 미국에 살 집 렌트를 알아보러 텍사스 사전견학을 가보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야 원래 영어로 업무를 보았으니 그렇다고 쳐도.. 수능식 영어, 취업식 토익 영어에만 익숙해있던 저. 심지어 마지막 영어공부는 10년 전이었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미국가서 아프면 안되는 데 둘 다 괜찮을까?떠나있는 동안 부모님이 아프시진 않겠지, 우린 장남 장녀인데.. 오만 고민을 하며 미국살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편 계속)